고백없는 국방백서(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문민정부가 첫 국방백서를 내놓았다. 「국방백서 93∼94」로 된 이 보고서는 개혁이란 이름으로 군의 대숙정을 단행한 김영삼정부의 첫 보고서여서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었다. 문민시대 군부의 진솔한 고백이 담기고,이를 바탕으로 국민의 참다운 신뢰와 사랑을 받는 군을 육성해 나가겠다는 자세를 보고 싶어하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에 나온 보고서는 우리의 이같은 기대에 크게 못미쳐 보인다. 내용에서 고백의 진심을 읽을 수 없다. 고백이 없는 백서는 백서일 수 없는 것이다. 진심으로부터 우러나온 반성이 없을 때 새롭게 태어나갰다는 군통수권자나 군행정책임자의 호언은 공허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창군이래 최대인원의 장성을 포함한 군간부를 숙정하고,병무행정을 난도질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우리는 지난 반년동안 군을 길들인다는 인상까지 주어온 비리척결 과정을 지켜보아왔다. 그러면서 보다 강군이 되는 진통으로 이해하려 했다. 그런데 국방부가 1년에 한번 내놓은 백서에서 우리는 그러한 반성과 다짐을 읽을 수 없다.
우선 목차만 볼 때 그것은 과거 「군사정권」의 그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구체적인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북한의 국사적 위협이나 주변정세,자주국방태세 확립을 위한 예산문제 등 지난 다섯해동안 나왔던 보고서 그대로다.
우리는 문민정부의 개혁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부분이 군이었다면 첫 백서는 적어도 다음 세가지는 짚고 넘어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왜 그토록 많은 장성과 고급간부가 군을 떠나야 했는가 하는 설명이다. 백서가 군은 물론 국민에게 진실을 알려 내외로부터 신뢰 바탕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설명이 충분히 있어야 할 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율곡사업」 문제도 그 배경이 소상히 국민과 군내에 알려져야 한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단편적으로 보도되었다는 것만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군이 반성해야할 점과 얻어야 할 교훈을 소상히 밝혔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유전방위­무전현역」이란 비아냥까지 받고 있는 병무행정에 대한 불신의 소지는 어디에 있고,그 대책은 무엇이라는 것까지도 내놓았어야 한다.
백서가 해마다 거의 같은 내용으로 되풀이하는 북한의 위협이나 한반도 안보정세의 특수성은 국가안보나 국민생활에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여기에 대처하는 능력을 높여가나는 일이야말로 군의 과제이자 국가목표이기도 하다. 이를 위한 군의 자체노력을 모르는 바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군,특히 문민시대의 군은 스스로를 국민에게 알리고,그래서 신뢰와 사랑을 받을 때 그같은 힘도 생긴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