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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친 행보에 관심 집중/탱크같은 저돌성/위기마다 초강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보수파 정적 가차없이 제거 예상/유혈사태 “흠집”… 민심향방이 변수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이번 사태를 보고 러시아인들은 곰같은 보리스옐친의 뚝심이 또 한번 러시아에 지각변동을 몰고오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의회건물을 포위한 후 곧바로 탱크를 동원해 사격을 가한 것이나 지방지도자중 자신의 대통령에 가장 격렬한 반대를 했던 노보시비리스크 주지사·아무르 주지사 등을 해임하고 반대하는 논조를 폈던 신문들을 정간시키고 모스크바 시의회를 완전 해산시킨 것 등은 모두 이러한 지각변동의 전조일 분이라는 것이다. 또한 러시아 전역의 지방의회마저 해산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과연 그의 밀어붙이기식 정치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하기조차 하다.
그의 불같은 성격,한번 시작했으면 끝을 보고마는 성격으로 보아 앞으로의 상황은 91년 8월 이래 벌어졌던 사태에서처럼 러시아의 정치일정이 그의 불같은 추진력에 의해 엄청난 속도로 진행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91년 8월 이후 스스로 사임하기 전까지 옐친의 공보수석을 지냈던 파벨 보샤노프는 『옐친은 기본적으로 위기때 더욱 강해지는 성격을 가진 지도자』라고 평하고 있다.
보샤노프의 말이 아니더라도 옐친이 보여준 지금까지의 정치경력은 그의 정치적 입신·양명이 기존상황의 격파에서 시작됐음을 말해준다.
그가 모스크바시 공산당 제1서기로 재직할때 앞뒤 사정보지 않고 각종 부패혐의로 당시 중앙정계의 거물들을 공격하고 관련자들을 해임시켰던 것도 그의 돌파력과 정치적 야망에 기초했던 일로 연구가들은 말하고 있다. 우랄지방의 조그마한 산간 벽촌 베레즈니키 출신으로 촌티가 물신 풍기지만 그와 한번이라고 협상을 해보았던 정치지도자들은 옐친의 집요하면서도 대세를 장악해나가는 협상력에 혀를 내두른다는 말을 하고 있다.
당원증을 반납하고 공산당을 뛰쳐나왔을 때,91년 8월 보수파 쿠데타 당시 탱크앞에 섰을때,그리고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반대를 무릅씌고 구소방을 해체시켰을때 옐친이 보여주었던 파괴적인 추진력·결단력은 그가 밀어붙이는 힘이 강하고 위기에서 강한 승부사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러나 옐친은 기본적으로 대중의 인기를 기초해 성장한 대중정치가이기도 하다.
수십만명의 인파앞에서 『라시야(러시아) 라시야』를 외쳐대는 모습은 분명 민중주의자로서 그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다.
러시아와 같이 권위주의적이고 대중정치인의 전통이 없었던 곳에서 옐친과 같은 공산당 당료출신의 정치인이 이와 같은 민중의 인기에 기초한 파퓰리스트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무척이나 이례적이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무리수 같은 강공책으로 국면을 전환시키는 특유의 파괴력을 보여주는 옐친의 성격은 바로 이러한 연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옐친의 뚝심은 또 한번의 도박을 감행하며서 수백명의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돌파력과 대세감각,대중의 인기에 기반한 그의 정치스타일이 러시아를 어떤 방향으로 몰아갈지는 아직 판단하기가 어렵다.<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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