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 과거단절 선언(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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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건군 45주년을 맞아 국가방위 최일선에서 헌신하고 있는 국군장병들에게 다시한번 감사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 아울러 우리는 2일 발표된 권영해 국방장관의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군,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군으로 거듭 태어나자」는 특별담화문에 주목하면서 몇가지 당부를 해 두고자 한다.
우선 국방장관의 새로운 다짐은 대다수 군인들의 지난 45년간의 공적에도 불구하고 군 전체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이 곱지많은 않다는 냉엄한 현실에서 출발하고 있다. 사실 우리 군은 6·25에 조국을 지켜내고,휴전이후 40년동안 갖가지 도발을 극복해온 빛나는 전통을 지니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전적으로 받아오지 못한 것은 군 본연의 자세에서 일탈,정치에 개입하고 때로는 막강한 조직의 힘을 치부의 수단으로 이용한 일부 사례가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국방장관의 「군은 국민의 군대」여야하고,「정의로운 군」으로 「역사의식에 투철」해서 「자주국방 태세의 확립」을 이룩하겠다는 다짐은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군대만이 강군이 될 수 있다는 반성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러나 우리는 이같은 군의 자기반성이 정권교체기의 통과의례가 아니기를 바란다. 5·16후의 박정희,10·26후의 전두환,6·29후의 노태우씨가 모두 여러가지 형태로 군본연의 임무를 강조했고,10·26후 군수뇌도 그런 선언을 했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군이 국민위에 군림하는 일이 없을 것이란 기대를 해왔으나 그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번 국방장관의 과거단절과 새 다짐을 믿고,또 앞으로 주시하고 싶다. 그것은 지금의 국내외 여건과 우리의 안보상황이 군의 더 이상의 일탈행동을 용서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국내적으로 볼 때 지금의 문민정부는 이미 군이 정치를 좌우하고 국민위에 군림하던 과거 30년의 군사정권과 전혀 다른 정치상황에 놓여있다.
더 나아가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상황 또한 한눈 파눈 군을 용납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긴장을 계속 조성하고 있고,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의 군사적 위협 또한 나날이 증대되고 있다. 최근 외신은 북한이 휴전선 근처에 병력을 전진배치하고 있고 핵갈등이 물리적 충돌로 발전할 우려가 높다고까지 하지 않는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국방장관의 군이 거듭 태어나겠다는 다짐은 그것이 비롯 정치적 상황타개를 위한 모색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큰 기대를 걸고 계속 주시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국군은 국민의 군대다.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지 못하는 군대는 이미 껍데기에 불과하다.
건군 45주년을 맞아 우리 군의 거듭 태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온 국민과 더불어 높은 긍지를 가진 본연의 군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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