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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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낯선땅 낯선 사람(74) 덕호가 땅바닥을내려다 보았다.발끝으로 흙바닥을 긁어대면서 잠시 후 그가 중얼거렸다. 『속이고는 못 산다 그말이다.내가 나서서 말할 거야 아니지만,그애가 태복인가 그 사람 아들이라면 말을 안해줄 수는없다 그말이다.사람의 도리라는 게 그런 게 아니잖냐.』 『그래이놈아 너 잘 났다.그래서? 길남이가 그 소릴 들어서 좋을 건또 뭐가 있니.』 『그래도… 안 그렇니? 어떻게 새끼가 부모찾아 나선걸 알면서,그걸 모른체 하니.그애 입장이 되어도 그렇지.있던대로 사실대로 알고 나면 그 녀석도 무슨 생각이 있겠지.
안 그렇냐?』 『저 편하자고 알려줄 걸 안하고,그건 못한다 그말이다.』 『어이 거기 조센진,이리 나와 봐.』 덕호가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재수없긴,오카자키 아냐.』 둘은 어슬렁거리며 담밑을 따라 걸어나왔다.대막대기를 들고 서서 오카자키가 그들을 불빛 속으로내세우며 물었다.
『너희들 거기서 뭐하는 거야?』 덕호가 대답했다.
『오줌도 못 누고 산답디까?』 『변소는 어디다 두고 거기서 오줌을 싸냐? 이 더러운 조선 것들.』 오카자키가 대막대기로 덕호의 배를 쿡 찔렀다.덕호가 중얼거렸다.
『이래저래 속 아픈 판에 이 놈이나 확 받아 버릴까.』 오카자키가 이번에는 조금 더 세게 덕호의 배를 찌르며 소리쳤다.
『조선말 하지마라.』 외면을 하고 서 있던 명국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가만 있어,너는 낮에 아프다고 일도안 나갔던 놈 아닌가.내 이럴 줄 알았지.그저 조선놈은 북어 두들기듯 패야 하는 건데.』 오카자키가 명국의 앞으로 다가섰다. 『요놈이 누굴 놀렸어.』 『제가 뭘 놀립니까?』 오카자키가대막대기를 한번 굴렸다.
『일도 안 나간 놈이 밤에는 돌아댕기기나 하고,그래도 날 속인 게 아니다 그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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