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분·피 빼앗는 기생충 몸에 좋은 일도 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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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기생충 중 '광절열두조충'은 다자란 것은 3~10m나 된다. 연어나 송어 등을 날로 먹었을 때 주로 걸린다. 일본의 한 기생충 학자는 이 기생충을 몸 안에서 키우고 있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사실 그 학자는 기생충을 연구한다기 보다 자신의 알레르기 질환을 고치기 위해 '적과의 동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기생충은 알레르기의 원인 물질인 백혈구 종류 중 하나인 호산구를 많이 소모해 알레르기를 완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사람의 영양분이나 피만 축내는 것으로 알려진 기생충이 좋은 일도 하고 있는 것이다.

단국대 의대 서민(기생충학)교수는 "기생충 대부분은 사람을 해롭게 하지만 때로는 키를 크게 하거나 특정 질병에 대한 증상 완화 등의 순기능을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서교수의 경우 천식환자가 기생충에 감염되면 그 증상이 완화되는지 마는지를 실험하고 있기도 하다.

숙주에 약간 좋은 일을 하는 기생충으로는 뱀이나 쥐에 기생하는 하얀색의 '스파르가눔'이 있다. 이 놈은 성장호르몬을 분비해 숙주의 몸집을 크게 한다. 이 때문에 스파르가눔에 걸린 쥐는 그렇지 않은 쥐에 비해 몸집이 대부분 크다. 사람들이 유전자 재조합으로 성장호르몬을 만들어내지 않았다면 스파르가눔이 분비하는 성장호르몬을 사용했을 것이다.

말라리아도 기생충이 만드는 병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말라리아 원충이 뇌까지 침입해 40도 이상의 고열과 함께 심하면 목숨까지 뺏기도 한다.

페니실린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매독의 특효약이 말라리아였다. 그 당시 뇌매독의 경우 치료약이 없어 걸리면 죽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매독은 열에 약한 것이 약점. 의사들은 매독에 걸린 사람에게 말라리아에 일부러 걸리게 해 고열이 나게 함으로써 매독을 치료했다. 이 방법을 찾아내 수많은 매독환자들의 생명을 건진 줄리어스 와그너-재우렉은 1927년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말라리아는 악성이 아니다. 이틀에 한번꼴로 열이 날뿐 죽는 일은 없다. 휴전선 초소에서 근무하는 일부 군인들은 말라리아 약을 줘도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약간 열이 나는 고통만 참으면 병원이나 내무반에서 환자 행세를 하며 편히 쉴수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과 같은 곳의 말라리아도 이럴 것이라고 생각했다간 큰 코 다친다. 그쪽 말라리아는 악성이어서 뇌까지 침입해 목숨을 위협한다.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한국군의 10%는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했을 것이라고 기생충 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을 정도다.

호르텐스극구흡충은 크기가 5㎜로, 복통과 설사를 자주 일으킨다. 이 기생충에 감염된 어떤 사람은 잦은 복통과 설사로 위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그 환자는 내시경 덕분에 초기 위암을 찾아내 완치했다. 이 기생충 탓에 내시경검사를 했다가 큰 병을 고친 셈이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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