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테랑 「고서」 전하던 날/“귀한책이니 품에 안고 자라” 농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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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 대통령/『휘경원도감』 새 책처럼 깨끗… 한지 우수성 입증
○장례식 상세히 기술
○…방한 이틀째인 15일 저녁 미테랑 대통령이 김영삼대통령에게 전달한 『휘경원원소도감의궤상』은 신문지 한장만한 크기의 것으로 조선시대 비빈의 장례과정을 1백여쪽에 걸쳐 소상히 기술한것.
한지의 우수성을 입증하듯 책 한장 한장은 새로 발간된 것처럼 보존상태가 완벽했으며 비단표지와 제책상태도 아주 양호. 첫 페이지 일부가 훼손된 흔적이 있으나 잘 손질돼 있다.
책 표지에는 「코리아 2495」 표시와 함께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낙인이 있다. 프랑스측은 이 책을 녹색 케이스에 넣은 다음 다시 스펀지로 둘러싼후 나무상자에 넣어 전달했다.
○“나머지 책도 반환”
○…김영삼대통령은 오후 7시15분 미테랑 대통령을 청와대 본관 현관에서 반갑게 맞은 다음 곧 바로 접견실로 올라가 대담.
김 대통령은 『바쁘신 가운데 직접 와주신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고,미테랑 대통령은 『프상스가 보관중인 책을 건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며 나머지 도서의 반환도 외무장관을 통해 협의토록 하겠다고 다시 강조.
김 대통령은 이날 있은 국회연설은 아주 훌륭했다고 찬사.
5분여의 대화에 이어 미테랑 대통령은 가져온 책 상자를 김 대통령에게 직접 건네며 악수를 나누었고 전달식이 끝나자 곧 청와대를 떠났다.
○…미테랑 대통령을 전송하고 난 김 대통령은 다시 접견실로 돌아와 배석했던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이민섭 문화체육부장관과 잠시 책을 열람했다.
김 대통령은 책의 상태를 보니 우리 한지의 우수성은 물론 문화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 같다고 만족.
김 대통령은 대기중인 전문가를 통해 이 책의 내용·의미 등을 곧 분석,발표하겠다는 이 장관의 보고에 『아주 중요한 도서이니 꼭 끌어안고 자도록 하라』고 말해 한때 폭소.
○“유학 문호 넓힐터”
○…한편 이날 오후 4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은 국회에서 여야의원들이 경청하는 가운데 30여분의 연설을 통해 양국간 관계 증진과 북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을 강조했다.
미테랑 대통령은 이날 국회 본청 현관에서 이만섭의장의 영접을 받은뒤 바로 2층 의장 접견실로 올라가 김종필민자·이기택 민주대표 및 양당총무,정재문 국회 외무통일위원장 등과 건강·날씨 등을 주제로 환담했다.
이 의장이 먼저 간단한 불어로 인사한뒤 『이번 방한을 계기로 양국의 우호가 더욱 증진되고 경제협력·문화교류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언급.
미테랑 대통령은 『역사를 회고할때 양국의 공통점은 유구한 문화와 전통을 가진 문화대국이라는 사실』이라며 『양국의 교류에는 문화·과학·기술 등 여러 분야가 있지만 보다 정확히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언어』라고 한국 유학생의 프랑스 유학 문화 확대를 약속.
이어 민자당 김 대표는 『미테랑 대통령이 양국의 새로운 내일의 큰 문을 열어주었다』고 했고 민주당 이 대표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프랑스 유학을 하고 돌아와서도 프랑스를 좋게 평하고있다』고 했다.
미테랑 대통령은 4시5분쯤 이광로 국회 사무총장의 안내로 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본회의장에 입장.
이 의장은 환영사를 통해 『심오한 역사인식과 문학성으로 인간과 사회,국가와 세계에 대해 가꾸어오신 지혜와 포부를 직접 듣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문필가·정치평론가이기도 한 미테랑 대통령을 극찬.
미테랑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항상 개선의 여지가 있고 변화가 있을 수 있는게 바로 민주주의』라고 서두를 꺼낸뒤 『한국의 수많은 기적중 민주주의와 자유를 향한 국민들의 불굴의 의지는 타의 모범이 되고 있다』고 말해 첫 박수.
미테랑 대통령은 『무엇보다 한국의 선결과제는 한반도 통일이며 한반도의 미래가 여러분의 손에 달려있는 만큼 스스로 자신이 운명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
미테랑 대통령은 특히 『프랑스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별로 하지않아 사실 한국을 잘 모르고 있다』며 『이번 방문에 수행한 4명의 각료와 함께 돌아가 한국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해 여야의원들이 박수로 화답.
미테랑 대통령은 『이만섭의장이 내게 불어로 인사말을 건네왔다』며 『앞으로 나도 한국어를 배우도록 해보겠다』고 부연해 또 박수를 받았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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