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90% 정치의 맹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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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공직자 재산공개와 금융실명제로 나라가 시끌시끌한 요즘「90%의 정치」라는 좀 이상스런 말이 귀에 들리고 있다.이 말은 金泳三정부가 90%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지만 정작 국가 통치에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할 10%의 지지를 얻 지 못하고 있다는,다분히 비판적인 어조의 말이다.실제로 국가를 이끌어가는핵심적인 계층은 아마도 전국민의 10% 남짓할 것이다.행정관료.국회의원등 정치인.기업인들과 교사.학자.지식인등 전문가 집단들이 그에 속한다.이런 세력사이에 만 약 현재 진행되고 있는 改革정치에 관해 진실로 冷笑的인 태도가 퍼지고 있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상황은 아닐 것이다.
최근 실명제를 실시하면서 수兆원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을 假名또는 借名으로 보유하고 있는 인사들이 과연 누구일지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시중에는 이 돈이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거물 정치인의 숨은 정치자금이거나,대기업의 비자금 ,공직에서 크게 致富한 돈을 私債로 돌린다는 전직 고위 공직자들의 검은 돈일 것이라는 등의 추측들이 만발하고 있다.전직 고위 정치인의 이름도 들먹여지고 심지어 전직 대통령의 이름도 오르내린다.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이 돈들은 필시「떳 떳하지 못한 돈」일 것이분명하고,따라서 돈 임자들은 전전긍긍하고 있을 것이라는 소문들이다. 고위공직자들의 재산공개는 더욱 떠들썩하다.이들은 서민들이 한푼도 쓰지 않고 수십년을 모아야 겨우 만져볼 십수억원의 재산을 평균적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해 모개로 斷罪의 단두대에 올라 있다.누구는 부인 이름으로,아무개는 자식 이름으로수십억원대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말썽이고,힘 깨나 쓰던 자리에 있던 인사는 직위를 이용한 혐의가 다분한 재산취득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아마도 이런 집단 매도의 배후에는 복합적인 감정이 서려있을 것이다.거드름 피우던 고위관료,위풍당당하던 정치인,위엄에 가득한 법조인들의 虛構에 찬 권위의 허울이 벗겨져 내려지는데 대한公憤과 통쾌감,그리고 嫉視의 감정이 뒤섞여 있다 는 말이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적절한 재산의 기준이란 과연 있을 수 있는것인가.부동산투기 열풍이 불던 시절,은행에 예금한 돈의 가치가하루하루 떨어지던 시절 자신의 재산증식을 위해 아파트 청약 대열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 다.老後의 생활안정을 위해,자신의 재산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부동산에 한번쯤 관심을 가지지 않은 사람도 아마 없었을 것이다.위로는 대통령이축재 혐의를 받을만큼 부패가 창궐했던「전국민 총부패의 시절」에엄밀하게 따져「부패의 공범자」가 아닌 공직자를 찾기가 쉬웠을까.고위공직에 있는 사람은 그래도 대쪽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당위론으로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현실적인 처방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 개혁의 시대가 돼 이들이 어떤 식으로든 斷罪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됐다.하지만「드러난 현상」에 대한 감성적인 매도와 비난에 우리는 다소 겸손하고 신중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이런 현상은 결국 우리 사회의 가진 자. 사회지도층과 가지지 못한 자.소외된 자들 사이에 深淵을 파고 거기에 不信의 벽을 둘러치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니다.사회의 분열적인 상황은 더욱 심화되게 마련이다.
가명의 자금들이 일시에 빠져나가 금융공황을 일으킬지 모른다는「10월 大亂說」이 시중에 떠다니고 정부 개혁세력의 일부를 겨냥한 色調論이 등장하는 것들이 이런 분열적인 상황의 심상찮은 前兆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화폐교환설이니,돈 세탁이니 하면서 널뛰듯하는 증권시장이 오늘의 불안정한 분위기의 반증이다.
***法.制度따른 마무리를 오늘 우리 사회의 지향점은 아마도국민을 하나의 방향으로 묶어 국가가 처한 정치.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 일일 것이다.부정부패에 대한 엄격한 司正작업이 개혁정책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듯 국민을「하나의 우리」로 묶어가는 작업 역시 필요하다.거기에 관용의 정신이 보다 적절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미 개혁의 제도적 장치를 갖췄다.때문에 엄혹한 비판도 중요하지만 이런 엄격한 제도적 장치에 근거한 合法的인 처리도 중요하다.여론 동향에 따른 인민재판식의 즉흥적 조치보다는 엄정한 기준에 따른 점진적이고 끈질긴 조치들이 오 히려 改革 정착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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