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 구매중단후의 율곡사업 향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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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기종 변경­고수” 놓고 속앓이/국방부/“F­16기 생산은 계속… 지장없다”/바꾸자니 국내 부품업체 타격
기종선정과정에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차세대 전투기 개발계획(KFP)이 최근 미 정부의 F­16 전투기 구매중단 결정까지 겹쳐 그 향배에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레스 애스핀 미 국방부장관은 지난 2일 클린턴 행정부의 새 국방정책을 발표하면서 한국정부가 차세대 전투기종으로 도입을 결정한 미공군 주력기인 F­16을 94회계연도 이후부터 구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결정은 지금까지 미공군의 주력기였던 F­16기가 기종상의 결함은 물론 더이상 차세대용으로는 적합치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우리도 기존 차세대전투기사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방부는 『미 정부가 구매를 중단하더라도 전투기 생산이 당장 중단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별다는 지장이 없으며 따라서 KFP사업도 계획대로 추진될 것』이라는 입장을 공식 표명하고 있다.
차세대 전투기사업 관계자들은 특히 『미 정부가 비록 구매를 중단하더라도 터키·그리스·포르투갈·대만 등이 이미 구매계약을 체결한 상태이기 때문에 적어도 오는 2030년까지는 생산에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한국이 지난 91년 차세대전투기종으로 F­16을 선정했을 당시 미 공군은 이미 F­16이 더이상 차세대기가 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F­22 등 새 기종개발에 착수하고 있었다』며 『당시 정책결정자들이 최소한의 안목만 가졌더라도 이같은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F­16기 선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당시 국방부는 미국 제너럴 다이내믹스사의 F­16과 맥도널 더글러스사의 FA­18 등 기종의 장단점을 검토한 결과 F­16의 성능이 개량됐고 가격도 저렴해 국내항공산업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돼 차세대 전투기종으로 최종 결정됐다고 발표했었다.
관계자들은 당시 KFP사업에 책정한 예산은 총 50억달러였으나 미 MD사가 계약직전 제시한 가격은 이를 상회하는 62억8천만달러로 기종선정때(89년 12월)보다 12억달러가 늘어나자 전면 재검토에 착수,비록 성능면에서 다소 떨어지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예산규모에 맞춰 F­16으로 기종변경을 단행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따라 국방부는 94년부터 완제기 12대 도입을 비롯,▲조립생산 36대 ▲면허생산 72대 등 모두 1백20대를 오는 99년까지 매년 24대씩 공군에 배치키로 했었다. 그동안 율곡사업 감사에서 가장 큰 의혹을 받아왔던 F­16기로의 기종변경 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국방부는 미국과의 계약을 전면 취소할 수도,계속 추진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고민을 하고있다.
현재 KFP사업과 관련,국내에서만도 삼성전자를 비롯해 한국종합기계·대영전자·현대정공 등 5개 업체는 전투기에 필요한 전자·유압·컴퓨터 등 전자부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30여개 부품업체들이 하청형태로 이들과 계약을 하고있다. 이들 업체는 특히 지난 91년 1차계약에서 36대를 수주한데 이어 지난달 2차계약을 통해 72대를 추가로 수주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참여를 준비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 업체는 총 4조원(52억달러)에 달하는 차세대전투기사업에서 절반에 해당하는 2조원 가량이 국내 참여업체에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상태다.
바로 이같은 국내 기업상황이 국방부로 하여금 이 사업을 전면 재검토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다.<김준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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