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특수강간범 검거」 실적 급급/10대들 마구잡이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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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딴범죄 비해 평점높고 구속쉬워/피해자 진수만 받아내 연행남발/부모들 집단 반발
「범죄소탕 1백80일작전」 기간중 경찰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강행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특수강간 혐의로 검거된 피의자들에 대해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이 검찰에 의해 재지휘 지시를 받는 사례가 많아 대부분 10대인 구속피의자 가족들이 별도 모임을 갖고 정당 및 법원 등을 찾아다니며 경찰수사의 부당함을 주장하고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집단행동까지 벌이고 있다.
경찰이 특수강간범 검거에 주력하는 것은 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이 범인1명당 실적 평점이 각각 5∼1점인데 비해 특수강간은 훨씬 많은 9점을 받는데다 피해자진술이 유일한 증거로 채택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어서 검거·구속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범행의 강제성여부를 따지지 않고 특수강간으로 몰아 영장을 신청하는가 하면 피해자의 일방적인 진술에 따라 2∼3년전의 일까지 들춰내는 등 무리한 수사태도를 보여 문제가 되고 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 12일 경기도 안양시 모아파트에서 박모양(17)을 과도로 위협,집단 성폭행한 혐의로 최모군(17) 등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조사결과 강제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27일 모두 석방했다.
이 경찰서는 지난 91년 8월 중순 서울 양천구 신월동 한 야산에서 여고생 김모양(17)을 집단성폭행한 혐의로 채모군(17) 등 3명에 대해 지난달 28일 영장을 신청했으나 이중 채군은 범행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검찰의 재지휘 지시를 받았다.
서울 동부경찰서는 지난달 중순 술에 취한 노모양(14)을 폭행하려한 혐의로 이모군(18)에 대해 영장을 신청하는 등 최근 5건의 범행혐의자 6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이중 5명이 불구속으로 풀려났다.
이러한 사례가 늘어나면서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민주당사에는 구속피의자 가족 30여명이 개별사건의 전면 재수사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2월초 롯데월드에서 만나 3개월동안 사귄 여자친구를 성폭행한 혐의로 지난 7월 구속된 은모군(18)의 어머니 김모씨(45)는 『경찰이 피해자 곽모양(17)을 추궁,관계를 가진 남자이름을 모두 알아내 2∼3년전의 일까지 들춰내 구속된 아이들이 벌써 30여명에 이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특수강간피의자의 변호를 맡았던 한 변호사는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가 대부분인 특수강간의 경우 진술의 객관성·합리성을 신중히 따져보아야 한다』며 『실적위주의 졸속수사를 벌일 경우 인권을 해치는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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