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대통령/서면조사/연희동­감사원 줄다리기 안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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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거부” “고발” 신경전 팽팽/“범법혐의 없어 답변할 필요성 없다”/연희동/“법에따라 원칙대로 처리”강경입장/감사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감사원 질의서에 대한 답변거부 쪽으로 다가감에 따라 새로운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
전·노씨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거부」를 실현한다면 전직대통령에 대한 감사원의 조사가 헌정사상 처음이듯 그것 역시 헌정사상 처음이 된다.
양측이 모두 전인미로의 길을 걷고 있어 신경이 팽팽해져 있다. 감사원은 「거부시 고발」이라는 입장이어서 파장이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전·노씨측에서 감지되는 답변거부의 몸짓은 거의 같은 속도,비슷한 강도로 진행되고 있다. 88년말 이후 줄곧 등을 대고 있는 두 전직대통령은 같은 시련을 맞아 일시적이나마 가슴을 마주대고 있는 느낌이다.
연희동 양쪽진영의 측근들은 거부추진의 배경으로 약속이나 한듯 똑같이 정치·법률적 문제를 꼽고있다.
정치적으로,또 헌정사적으로 전직대통령이 뚜렷한 비리·범법혐의가 없는데도 「재임중업무」에 대해 추궁의 화살을 맞아서는 안된다는 논리다.
노 전 대통령의 한 핵심측근은 24일 『그런 선례는 현 대통령,그리고 그 뒤를 이을 대통령이 국정수행에 좋지못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전직대통령 감사의 선례를 만들어서는 곤란하다는 청와대·민자당논리의 냄새가 같이 풍겨 나온다.
연희동측은 법적으로도 서면질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측근들은 『감사원은 감사원법 50조에 따른 답변협조 요구라고 하지만 질문내용을 보면 사실상 재임중 행위에 대한 명백한 감사이며 조사』라고 논박하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감사원법은 대통령의 업무는 감사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측은 각각 수석비서관들을 중심으로 여러차례 대책회의를 갖고 정치·법률적 문제를 검토해 「거부」 쪽으로 결론을 거의 굳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고위측근은 「거부가능성이 95%」라고 귀띔했다.
노 전 대통령의 참모들은 여러차례 독회를 거쳐 대국민해명서 문안을 마무리지어 놓았다. 한 인사는 『노 전 대통령의 결재만 남아있는데 번복가능성은 적다』고 말했다.
해명서는 원고지 10여장 분량으로 F­16을 결정하게된 「불가피한」경위뿐만 아니라 답변거부의 「정당성」도 담고 있다고 한다.
F­16 선정경위 작성에는 당시 청와대 국방비서관이었던 K씨가 자료를 제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안작성은 정해창 전 청와대비서실장의 지휘아래 이루어졌다.
전 전 대통령측도 원고지 25장정도의 대 국민해명서를 준비해놓고 발표시기만을 재고있다. 이 작업에는 안현태 전 경호실장,이양우 법률고문,민정기비서관 등이 참여해 왔다.
전씨측은 86년 평화의 댐 건설을 보도한 신문 스크랩도 모으고 당시 관계했던 전임자들에게 상황을 확인했다. 그러나 안기부 등 관계부처에 지금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묻지도,자료를 요청하지도 않았다고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
전 전 대통령은 성명에서 국가안보를 위해 평화의 댐 건설은 불가피했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촉각을 곤두세우며 연희동쪽 기류를 주시하고 있다. 23일까지만해도 감사원은 『시한은 넘겨도 전 대통령들이 답변할 것』이라고 낙관했으나 24일 상황을 새롭게 분석하고 대책을 숙의하고 있다.
감사원측은 『우리로서는 법에 따라,원칙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만 밝히고 있다.
감사원은 이미 답변의 안오거나 부실하면 추가조사를 실시하고,연희동이 끝까지 답변을 거부하면 법에 따라 고발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
따라서 답변거부가 확정될 경우 감사원은 검찰에 전 대통령들을 고발할 가능성이 높다.
관계자들은 「조사는 위법」이라는 연희동의 주장은 말도 안된다고 일축하고 있다. 감사원측은 질의서는 법50조에 따른 답변협조요구라고 밝히고 있다.
감사원의 한 고위당국자는 『재임중 고의 또는 실수로 일을 잘못해 국민과 역사에 폐를 끼친 혐의가 있다면 어떻게 감사원을 통한 국민의 질문을 피할 수 있겠느냐』고 반발하고 있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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