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수능」의 평가와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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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종합사고 측정… 일단 “합격점”/사설읽기등 독서교육 바람직/2차 포기않게 쉽게 출제를/3회 「입지지옥」 완화가 숙제
기대와 우려가 교차됐던 제1차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일단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종래 학력고사와는 달리 대부분 종합적인 사고력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출제돼 당초 도입목적인 「고교교육 정상화」에 어느정도 일조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두차례에 걸쳐 시험을 치르고,수험생에 따라서는 대학본고사까지 모두 세차례나 「지옥입시」를 치르는데서 오는 학교교육의 파행화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장교사와 학원강사를 통해 이번 수학능력시험에 대한 종합평가 및 문제점과 개선대책을 알아본다.
이번 수학능력시험은 일곱차례의 실험평가와 비교해 문제가 세련되고 교과내용과도 접목되는 등 대체로 무난했다.
전반적으로 단편적인 지식 암기보다는 통합교과적인 사고능력 측정을 중심으로 출제됐다.
언어영역의 경우 예술도 포함되는 등 탈교과적으로,외국어는 실생활에서의 의사소통 중심으로 각각 출제됐다. 실험평가에서는 언어와 수리탐구Ⅱ의 사회분야에서 고도의 논리적 사고를 요하는 철학문제가 출제되기도 했으나 이번에는 배제됐다.
그러나 수리탐구영역은 과목의 성격상 통합교과적인 문제가 출제되지 못했다. 특히 과학분야는 물리·화학·생물·지학이 과목간 특이성이 너무 확연해 통합하기가 어려운 한계가 인정된다.
수리탐구Ⅰ(수학)은 복잡한 공식을 몰라도 수학적 사고체계만 서있으면 풀 수 있도록 배려된것 같다. 종합해볼 때 암기위주문제가 철저히 배제되면서 『개선된 학력고사식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씻은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논리나 사고력뿐만이 아닌 단편적인 지식도 어느정도 필요한데,이점이 너무 외면된것 같다.
제도적인 측면에서 수학능력시험의 두차례 분리실시는 문제점이 많다.
우선 학교에서의 정상적인 교과과정 이수가 어렵다. 비록 1차 수능시험에서 2학기 교과과정이 제외됐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고교에서는 7월까지 전 교과과정을 마친 상태다. 따라서 2학기수업이란 문제풀이위주의 반복학습밖에 할 수가 없다.
학교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독서지도의 강화다.
대부분의 고교에서는 국어시간에 독후감쓰기·사설읽기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한 간접경험의 축적에 힘썼다. 사회·과학과목도 자료수집­해석­토론­종합평가식의 교육방법을 시도했다.
교육이 지식의 「양」에서 「질」로 변화한 것이다.
또 시험이 종합적인 사고력을 측정하다 보니 암기와 풀이위주의 과외가 실효성을 잃었다.
생소하다는 부담감 때문에 일부에서는 과외가 오히려 극성이었지만 결과가 나오면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기회의 균등에 어긋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노력」보다 「IQ」에 더 좌우되는 것 같다. 종합사고란 나이와도 연관이 있어 재수생의 경우 군제대자 또는 대학중퇴자들이 학력고사식 때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수능시험은 대학선발을 위한 것이지만 고교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교육당국은 3년여에 걸쳐 연구·검토했지만 막상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아직도 확실한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연수한번 제대로 없이 책만 덜렁 내주는 식으로는 20∼30년동안 계속돼온 교육방식을 하루아침에 바꿀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시설부족도 큰 문제다. 과학과목의 경우 실험의 결과보다 실험과정이 중시됐는데,현실적으로 학교에는 변변한 실험실 하나 제대로 갖춘 곳이 드물다. 내달 24일이면 시험성적이 통고되겠지만 수험생들은 자신의 성적분포를 대충은 알 수 있다.
따라서 상위권학생은 대학별고사에 대비,2차수능시험과 본고사를 3대7의 비율로 시간을 배분해 공부하는 것이 좋다.
중위권학생은 1차시험에서 취약했던 것으로 나타난 부분에 대한 집중적인 반복학습이 필요하다.
1차시험에서도 나타났듯 교과별 개념정리가 확실히 돼있어야하는 만큼 교과서를 중심으로한 다양한 문제풀이식 학습이 효과적일 것이다.
대학진학이 어려운 하위권학생은 방과시간후를 이용해 컴퓨터나 공작기술 등 나름대로의 직업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학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시험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작업도 필요하지만 우선 당장은 2차시험이 쉽게 출제돼야 한다. 2차시험이 어려울 경우 많은 학생들이 사실상 포기함으로써 교육의 파행화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와함께 문·이과의 구분실시도 꼭 필요하다. 이과에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몰려있지만,대학진학시 성적에 맞춰 문과로 역류될 경우 큰 혼란과 대학수학에의 문제점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정리=박종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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