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로 몰리는 투자자금(1달러 100엔시대: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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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유럽 통화불안 장기화가 부채질/환율개입보다 흑자삭감이 열쇠
지난 16일 일본은행은 외환시장에서 엔화를 팔아 달러를 10억달러나 사들였다. 올들어 일본은행의 외환시장 개입액은 3백억달러가 넘는다. 그러나 하루 최소 60억달러 이상 거래되는 동경외환시장에서 일본은행만의 힘으로 투기자금의 엔화매입을 저지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유럽의 기관투자가를 비롯한 모든 자금들이 오로지 엔화매입 일변도로 거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금리는 세계에서 가장 낮다. 그런데도 모두 엔화를 사려고 덤비는 것은 결국 일본의 방대한 경상수지 흑자때문이다. 일본은 지난 상반기중 7백51억달러라는 막대한 무역흑자를 냈다. 올해 무역흑자는 1천3백억달러를 넘을 전망이다.
어느 하나라만의 방대한 무역흑자는 자유무역질서를 파탄으로 몰고간다. 85년 G7의 플라자 합의 이후에도 계속 천문학적으로 늘어가는 일본의 무역흑자는 일본을 다른 나라들의 표적이 되게 했다.
특히 미국경제 재건을 내세우고 등장한 빌 클린턴정권은 일본에 무역흑자 삭감책 제시를 강력히 요구했다. 미국은 일본에 대해 ▲국내총생산(GDP)의 1.5∼2%의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고 환율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는 등 거시 경제정책을 쓰고 ▲수입수량 목표를 구체적으로 할당한 분야별 협의 ▲시장개방을 위한 구조조정협의 등을 요구했다.
미일은 무역불균형 시정을 위해 내달 이같은 안건을 놓고 포괄경제협의를 개시한다. 클린턴 대통령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프레그 버그스텐 미 국제경제연구소장은 『일본의 구조적인 무역장벽은 미국의 대일수출을 연간 90억∼1백80억달러 정도 가로막고 있다』며 일본의 시장개방을 주장했다. 버그스텐은 지난 2월 교토(동경)에서 가진 강연에서 미일 무역역조 시정을 위해서는 엔화를 절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엔고를 부채질했다.
또 유럽 통화불안이 장기화되면서 도피성 투기자금은 엔화로만 몰리고 있다. 미국은 달러화가 다른 통화에 대해 강세를 보이고 물가도 안정돼 엔고를 방관하고 있다. 따라서 엔화 이외에 투자할 만한 통화가 없으니 엔화가 오를 수 밖에 없다.
엔화가치가 앞으로 얼마나 오를 것인가는 일본이 흑자삭감을 위해 눈에 보이는 내수확대 및 시장개방책을 내놓느냐 여부에 달렸다. 내수확대를 위해서는 세수감면과 대대적인 공공투자 확대가 필요하다. 세금감면은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재원 때문에 대장성이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올들어 13조엔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한뒤 아직 이를 소화하지 못한 상황에서 또 경기대책을 내놓기도 어렵다. 이밖에 시장개방은 복잡한 유통구조,계열거래 등 일본의 전통적인 상관행을 타파하고 정부규제를 푸는데서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러나 이는 각종 압력단체의 반발을 누를 지도력을 갖춘 강한 정부를 필요로 한다.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정권에 이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따라서 내달의 미일 포괄경제협의 때까지 엔화는 오를 것이며 1백엔대도 무너질 것이라는 것이 외환시장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17일 산케이(산경) 신문이 주요은행의 외환딜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엔화는 단기적으로 1백엔대가 무너져 가을에는 달러당 95엔까지 치솟은 뒤 엎치락 뒤치락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급격한 엔고는 J커브 효과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일본의 무역수지 흑자를 더욱 늘리면서 경기회복은 지연시키고 일본기업의 해외이전을 가속화 시킨다. 일 기업의 해외이전은 주로 동남아로 진행돼 한국으로서는 경쟁자를 키우는 결과가 된다. 일본의 경기회복 지연은 세계경기와 무역에도 악영향을 미치므로 환율조정이란 대증요법보다는 근본적인 흑자삭감책이 요구된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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