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통령의 「사필귀정론」/신성호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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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영삼대통령은 대구동을과 춘천시에서 치러진 8·12 국회의원 보선의 과열·혼탁사례에 몹시 마음이 걸리는 모양이다. 특별한 불법이 아닐경우 선거가 끝나면 대충 묻어 두고 넘어가는 지금까지의 관례와는 달리 김 대통령은 불법에 대한 사후엄단 방침을 누차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지난 16일 민자·민주 양당 3역과의 조찬 간담회에서 8·12보선의 불법행위에 대해 철저한 책임추궁 방침을 거듭 천명했다.
김 대통령은 『정치 선진화에 있어 이번 보궐선거는 걸림돌이 되었다. 선거는 끝났지만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는 않겠다』고 단호한 어조로 엄정처리 방침을 분명히했다.
김 대통령은 보선 다음날인 지난 13일 수석비서관들과 조찬을 함께하면서도 『대구에서의 민자당후보 낙선은 불법을 저지른데 따른 사필귀정이다. 대구시민들이 현명한 판단을 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김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일견 정치권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으로 비쳐진다.
김 대통령이 16일 조찬회동을 통해 『시대와 세계가 변했는데 우리 국회만 변하지 않았다. 정치권이 모두 반성해야 한다』고 정치권의 맹성을 촉구한 대목에서 그의 정치권에 대한 불만의 강도가 어느정도인지 읽을 수 있다.
종전에도 최고 통치권자는 정부 당국자들은 으레 선거철만 되면 불법행위에 대한 엄단 의지를 천명해 왔다.
그러나 막상 선거가 끝나면 흐지부지 처리되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표를 통한 유권자들의 심판이 내려졌다는 나름의 논리를 내세우기도 했다.
김 대통령의 거듭된 의법 처리 방침은 이같은 구 시대적 작태를 혁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수도 있는만큼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김 대통령이 왜 진작 이같은 의지를 내비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선거가 진행되는 동안 김 대통령이 혼탁사례에 대해 단호한 의지를 피력하고 제재를 즉각 옮겼더라면 금품과 폭력으로 얼룩진 불법·과열사례는 분명 크게 줄어들었을게 틀림없다. 그런 측면에서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의지가 뒤늦게나마 가사회된다면 그것도 우리 선거문화를 진일보케 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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