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손 안잡히는 외교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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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연신 흡연실을 들락거리는 외교통상부 북미국 직원들. 복도에서 소곤거리다 기자를 보곤 슬쩍 피하는 과장들. 대책회의에 바쁜 간부들. 점심시간 청사 밖에서 동기 모임을 한 서기관급 외교관들….

청와대의 외교부 간부 조사가 알려지고 징계 얘기가 나온 12일과 13일. 외교부는 일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의 민간 방북단 결과 보고가 있었고, 2차 6자회담 조율이 시작됐고, 용산기지 이전 문제를 매듭짓는 한.미 미래동맹 회의가 눈앞에 다가왔지만 정책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난 분위기다.

외교관들은 청와대의 조사와 뒤이은 언론 플레이에 반발했다. 중견 간부는 "외교부 북미 라인을 표적으로 삼아놓고 걸려들기만 기다린 것 같다"면서 "사적 장소에서의 발언까지 문제삼고, 기자와 통화한 기록을 갖고 고위 간부를 불러 조사한 것은 군사정권 때도 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12일 저녁 퇴근 길에 만난 서기관급 외교관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고 했다. 심의관급 간부는 "입이 있어도 말을 않겠다. 유구불언(有口不言)이다"고 심경을 전했다.

외교관들은 특히 조사 대상 과장의 발언 확인차 사무실의 공익요원, 타이핑 요원까지 청와대가 조사한 데 대해 불쾌해했다. 한 관계자는 "대미 협상이 산적한 마당에 조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사안이 밖으로 흘러나오면 어떻게 외교를 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했다. 북미국장은 13일 6자회담 등 협의차 방미길에 올랐다.

그러나 자조와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심의관급 간부는 "이번 조사가 인사 얘기나 하고 남이나 비판하길 좋아하는 외교관들의 구태를 벗게 하는 계기도 됐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징계 확대=민정수석실 핵심 관계자는 13일 "발언 당사자뿐 아니라 지도 책임이 있는 상사들의 징계도 불가피하다"며 "북미국 모 과장을 포함, 3인 이상을 징계 대상으로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징계 폭을 오히려 확대할 태세다.

이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의 대미정책에 대한 폄하 발언이 사석뿐 아니라 회의석상에서까지 이뤄졌다"고 밝혔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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