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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선시풍시 "자기 기만서 벗어나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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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념이나 도시세속문명에 지친 시인들이 80년대말 들어 하나 둘씩 산과 바다 같은 자연, 불교 등의 동양사상으로 빠져들면서 이제「선시풍시」 혹은 「정신주의적 초월시」는 시단의 무시할 수 없는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우주적 자연이나 역사로부터 혹은 끊임없는 자기부정으로부터 큰 깨달음을 얻어내려는 이러한 시들이 그러나 대부분 그럴싸한 수사로 금풍농월을 일삼는「속빈 강정」이라는 혹독한 평가가 나왔다.
신정현씨(서울대 영문과교수)는 최근 내놓은 평론 「산비둘기의 꿈 그리고 수도승의 해탈」(근간 『문예중앙』가을호)에서 고은·김지하·이성복·황지우·조정권·최승호씨 등의 근대 선시풍 시집들을 분석하며 『산으로 가 도를 닦아야 할 승려들은 속세에 남고, 속세에 남아 현실을 초탈해야 할 시인들은 산으로 바다로 현실을 버리려한다. 재능 없는 시인들은 멋없는 산문으로 초탈을 절규하고, 재능 있는 시인들은 지나치게 현란한 음악 속에 스스로를 질식시킨다』고 경향과 유파를 초월, 너나없이 달려드는 「선시풍시」작업을 질책했다.
『전생에 나는 해마였다 이제 나는…고래의 너털웃음에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멍게의 울음에 연민을 느끼지 않는다…요즘 나는 계속 해체되는 중이다 하기야 내 살은 바다가 잠시 빌려줬던 것이니까 해체되면서 성하의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다』 최승호씨의 시「죽은 해마」일부. 죽음의 긍정을 통한 초월을 노래하고 있는 이 시에 대해 신씨는 『기계론적 관점에서 본 윤회사상은 존재를 설명하는 낡은 방법으로 효용이 없어진지 이미 오래』라며 『지금 이 시점에서 시인은 별로 신기하지도 않은 말의 유희로 왜 이 낡은 생각에 옷을 입히는가』고 묻고 있다.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얼음처럼 빛나고,/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가장 높은 정신은/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신씨는 조정권씨의 연작시 「산정묘지」에 대해서도 가장 높은 정신을 지향하고 있으면서 실상현실과 자신에 대한 고뇌, 그 고뇌를 바탕으로 한 초월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신씨는 조씨의 정신지향적 시들에 대해 『어조를 조금 바꾸고 한문으로 옮겨놓는다면 한세기전 좀 살았던 어느 한량이 풍월을 읊는 것 같다』며 『이 무슨 유유자적인가』고 묻고 있다.
『포크레인 같은 발로/걸어온 뻘밭/들고나고 들고나고/죽고 낳고 죽고 낳고/바다 한가운데에는/바다가 없네』
시「게눈 속의 연꽃」이 보여주듯 황지우씨의 시들에는 초월의 길을 찾아 방황하는 모습만 보일 뿐 새로움은 없다고 신씨는 말한다. 더구나 황씨의 시들은 『정확성과 간결성, 무엇보다 구체성이 없으며 초월지향의 농축된 정서만 가득할 뿐』이라는게 신씨의 평이다.
시적 초월은 『현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으로 들어가 현실을 부둥켜안는 것이며, 현실을 확장하면서 현실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신씨는 그러기 위해서는 시인들이 『낭만주의자의 허황된 꿈, 욕망의 거세를 꿈꾸는 수도승의 자세, 세계가 자신을 위해 변화해 주기를 바라는 혁명가의 화려한 꿈』과 같은 일체의 망상세계에서 깨어나야 될 것임을 주장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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