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갈림길(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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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필연의 요소를 지니거나 아니면 우연의 요소를 지니도록 되어있다. 가령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이지만 어떤 사람이 길을 걷다가 수십년전에 헤어진 친구를 만나게 됐다면 그것은 우연이다.
그러나 동서고금의 많은 사상가들은 인간사회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란 없다고들 말한다. 인간들이 「우연」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그들이 사건의 원인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때 인간들은 우연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는 것이다.
그같은 관념을 바탕으로 하여 등장한 것이 운명론이나 결정론 혹은 기독교신학자들이 말하는 「신의 섭리」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모든 일은 그렇게 되도록 결정지어져 있다』는 말을 남겼으며,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참새 한마리가 떨어지는 것조차 신의 섭리라면서 『세상에 아무렇게나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주장했다.
비단 신학자들의 그같은 주장이 아니더라도 한사람의 운명이 극히 사소한 일들에 의해 삶과 죽음이라는 양극으로 엇갈리는 일들을 과연 우연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 아시아나항공기 추락사건에 대해 어떤 신문의 기사제목은 「만약 회항했다면 그같은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표현을 썼다. 너무 당연한 소리여서 오히려 이상할 지경인데,그러나 우리 항공수송체제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감안한다면 이번 사고는 필연적인 사고였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고를 낸 비행기 탑승예약을 했다가 다른 일이 생겨 예약을 취소해 화를 면한 사람들과 대기자 탑승자격으로 가까스로 얻어탔다가 죽거나 다친 사람들의 경우는 순간적인 선택으로 생사가 엇갈린 「우연」의 경우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같다.
그렇다면 각자의 사소하고 우연한 일들에 의해 필연적인 사고를 겪을 수도 피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니 기막힌 일이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죽음이란 필연적이라는 것 뿐이다.
사망자의 명복을 빌며 부상자들의 빠른 쾌유를 기원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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