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재 유착 뿌리 뽑힐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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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18일 실시된 일본중의원선거 후 요즘 일본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집권 자민당은 55년부터 38년간이나 계속된 1당 장기집권 과정에서 온갖 부패상을 노출시켜 「부패의 온상」이란 오명을 얻었고, 마침내 보수색 강한 일본국민들의 인내심을 자극했다. 일본의 정치개혁은 바야흐로 출발점을 떠난 것이다.
그러나 정치개혁 결과에 대해 지금으로선 섣불리 낙관하기 어렵다. 7·18선거결과 보수와 혁신 양대 세력이 이끌어온 「55년 체제」가 무너지고 「93년 체제」라고 할 만한 신보수체제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개혁은 과연 얼마나 성과를 거둘 것인가. 일본정치는 정말 달라질 것인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과 연합국에 의한 점령은 일본사회에 민주화·자유화의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신성천 황제와 국민에게 감사봉공을 요구하던 권위주의적·공동체적 압력의 족쇄에서 벗어난 일본국민들은 전후민주주의의 싹을 키웠다.

<38년간 독주 무너져>
그러나 전후민주주의는 곧바로 「점령하 민주화」 라는 한계성 때문에 좌익세력의 비판 대상이 되었다. 분열됐던 사회주의세력은 지난51년 샌프란시스코강하조약으로 일본이 독립되고 추방됐던 우익정치가들이 속속 정계로 복귀, 보수세력의 주류로 등장함에 따리 결집의 움직임을 보여 55년 공산당을 제외한 사회주의정당이 통합돼 일본사회당이 출범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보수진영도 같은 해 11월 자유당과 민주당을 통합해 자민당을 탄생시킴으로써 2대 정당 대립시대, 즉 「55년 체제」가 시작된 것이다. 60년 사회당에서 이탈한 민사당의 출현으로 야기된 야당의 다당화는 일본의 눈부신 경제발전에 힘입어 자민당 장기집권을 불변의 사실로 만들었다.
자민당의 독주는 안정을 필요로 한 일본경제 발전기에 상당한 역할을 했으나 오늘날 정계개편의 불씨가 된 뿌리깊은 부패구조를 낳았다. 이것이 바로 「철의 삼각형」이다. 철의 삼각형이란 정·관·재 각 집단이 서로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일본사회의 지배구조를 말한다..

<고질적인 부패상 노출>
이 같은 3자 공생관계는 일사불란한 정책수행을 가능케 해 일본의 비약적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으나 비정상적인 「검은 거래」가 개입돼 일본정치의 고질적인 부패상으로 노출됐다. 국제적으로 시장개방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는 요즘에는 오히려 일본의 폐쇄성을 상징하는 비판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집권 자민당을 움직여온 것은 바로 파벌이다. 각 파벌 보스들은 자파소속 의원들을 이끌고 당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필요로 했다. 이러한 자금마련에 유효 적절히 이용됐던 게 바로 철의 삼각형이다. 파벌에 소속된 개별의원들은 그들 나름대로 지역구의 관청·기업을 상대로 작은 철의 삼각형을 이용, 정치자금 마련에 열을 올렸다 「돈은 곧 힘」이라는 금권정치의 상징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 전 총리의 말대로 자민당 의원들은 한푼의 정치자금이라도 더 긁어모아야 했다. 이 가운데 정치스캔들로 터져 나와 자민당을 위기로 몰아넣은 사건이 록치드·리크루트·사가와 규빈(좌천급변)사건 등이다.
일본국민들은 각종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정치자금 마련이란 대의명분 때문에 한편으론 이를 이해하는 구석도 있었다. 그러나 자민당 최대파벌이었던 다케시타(죽하)파의 가네마루 신(금구신)전부총리가 개인 주머니를 채우기 위채 정치란 대의를 들먹인 사실이 들통남에 따다 일본국민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게 됐다
일본의 정치에 비싼 돈이 드는 또 하나의 요인은 중선거구제다. 자민당은 의원 개인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당의 안정 의석 확보를 위해 중선거구제를 고수해왔으며 사회당 역시 이에 동조했다. 그러나 중선거구제는 정권의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고 과열된 경쟁 속에서 엄청난 정치자금이 요구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인 1인1표에서 한 표의 비중에 차이가 나는 불합리성도 있다. 인구변동에 따른 선거구 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91년 기준으로 가나가와(신나천)현 4선거구는 의원 한 사람당 인구가 약46만명인데 비해 동경 8선거구는 약13만명으로 양자의 격차는 3·34배에 이르고 있다..

<국민관심 적어 문제>
이제 일본에는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신보수정치 시대가 도래했다. 사회당은 70석을 얻어 아직 제1야당이라고 자위하고는 있으나 신생당·일본신당·신당사키가케등 신보수세력을 합치면 1백3석에 달한다. 이는 과거처럼 보수가 싫으면 혁신을 선택하는 양극의 시대가 아니라 보수라는 큰 테두리 속에 머무르면서 입맛에 맞는 정책을 선택하는 보수체제안 다당화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그러나 생산자(국가)중심에서 소비자(국민)중심으로 바뀌었다는 사실과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모든 보수정당들이 이구동성으로 인정하고있는 마당에 이들 정당의 차이점을 발견할 뚜렷한 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일본 정치개혁의 앞날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게 만든다.
일본국민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정치형태는 보수정당들이 정책대결을 벌여 번갈아 가며 정권을 담당하는 것이나, 정책구분이 쉽지 않아 자민당 집권체제를 무너뜨리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밖에 67·25%라는 전후 최저의 투표율이 말해주듯 극도의 정치무관심도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사회주의만 아니면 보수 속의 그 어떤 정당이라도 상관없다는 식의 정치무관심은 일본 정치변화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김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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