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개혁(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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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담배꽁초를 변기에 버리지 말것.』
1946년 주한미군사령부의 고급장교 화장실에 붙어 있던 주의문의 내용이다. 주민들이 꽁초를 열심히 주워모으고 있는 것을 본 한 졸병이 그 밑에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여 놓았다. 『젖으면 재생이 곤란하니까.』
2차대전 종전이후 독일에서는 극심한 인플레로 마르크화가 교환수단으로 거의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고대통화의 하나였던 담배가 다시 화폐로 통용됐던 것이다. 1개비의 궐련은 훌륭한 잔돈이고,1갑 또는 1상자의 담배는 중요한 거래단위였다. 꽁초를 이용한 재생궐련의 교환가치는 반값 정도였다고 한다.
1,2차 세계대전 직후 천문학적 전쟁인플레에 시달리던 유럽 여러나라는 화폐개혁이 불가피했다. 1923년 독일은 무려 1조대 1의 교환율로 화폐개혁을 했다. 헝가리는 0이 29개나 되는 자릿수의 비율로 화폐 평가절하의 기록을 세웠다.
우리나라에서는 17세기 후반 상평통보의 전국적인 유통으로 화폐제도가 정착되면서 상업경제가 근대적인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러­일 전쟁의 결과 조선이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하자 우리경제도 일제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경제를 식민지체제로 바꾸는 작업의 하나로 1905년 (광무 9년) 일제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일본인 재정고문의 주관으로 실시된 우리 역사상 최초의 화폐개혁은 일본 상인들에게 이 계획을 미리 알려줌으로써 우리상인들은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이 악의적인 책략으로 조선의 상업자본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재기불능 상태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정부가 수립된 뒤 두차례의 화폐개혁이 있었다. 한번은 6·25동란중인 53년 2월 전쟁경제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것이었다. 두번째는 5·16 1년후인 62년 6월이다. 사장돼 있는 민간자본을 동원한다는 명분이었으나 결국 실패한 것으로 평가됐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26일 옐친 대통령이 휴가를 간 사이 전격적으로 단행한 화폐개혁 조처로 러시아정국이 불안에 빠졌다고 한다. 러시아 국민들이 새 화폐의 유통을 거부하는가 하면 최고회의 의장·검찰총장·재무장관 등이 강력한 반발을 보이고 있어 이 조처의 성패여부가 주목된다. 어차피 러시아정부의 권위와 신뢰는 안팎으로 큰 상처를 입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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