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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기개 실천한 참군인/24일 타계한 이세규장군 생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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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유신정권 반대 7차례 고문에도 소신 지켜/월급 쪼개 이웃사랑… 「콩나물 대령」 별명도
암울했던 70년대초 유신반대로 박정희정권의 눈밖에 나 7차례에 걸쳐 군수시관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후유증에 시달리던 이세규 전 의원(66·예비역 준장)이 24일 국군통합병원에서 숨졌다.
육사 7기로 임관된 이씨는 초급장교로 6·25에 참전,전공을 세운 이래 69년 준장으로 자진 예편할때까지 강직한 성품으로 부하의 존경을 받아온 외곬 군인이다.
특히 지금껏 단 한번도 자신의 집을 가져보지 못할만큼 청렴결백한 이씨의 성품은 부하들의 입에 아직도 회자되는 여러가지 일화를 남기고 있다.
대령시절인 58년 육군대학 교관으로 일한 이씨는 자신의 월급을 쪼개 진해시내의 고아원·양로원 등에 성금으로 기탁하는 바람에 매일같이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내놓는 상에는 밥한그릇에 콩나물국이 고작이었을 정도. 이때부터 이씨에게 「콩나물대령」이라는 별명이 붙게됐다.
사단장시절 임지로 면회를 간 부인·자녀들은 『민간인이 군의 식량을 축낼수 없다』는 이씨의 고집(?) 때문에 서울에서 쌀과 부식을 가져가야 했으며 군용차량에 발도 못올리게 해 관사로부터 버스터미널까지 수㎞길을 걸어 다녀야만 했다.
육사 7기의 선두주자로 선·후배로부터 신망을 받던 이씨는 11사단장으로 있던 69년 『박 대통령이 후계자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물러나면 국민의 존경을 받을것』이라며 3선 개헌에 반대의사를 밝힌 사실이 알려져 소장진급이 취소되자 미련없이 예편을 신청해 자진해 군복을 벗었다. 5·16이전인 55년 육군대학 교관과 학생신분으로 만나 막연한 관계를 유지했던 이씨와 박 대통령은 이후부터 악연의 골을 파기 시작했다.
군복을 벗은 이씨는 대통령선거를 앞둔 71년 신민당에 영입돼 김대중후보의 안보담당 특별보좌역으로 정계에 입문하면서 정치인으로 변신하게 된다.
전국구 의원으로 8대 국회의원에 진출한 이씨는 황낙주·한병채씨 등 초선의원 12명과 「목요회」를 조직,의정개혁활동을 주도하는 한편 「실미도 간첩단사건」이 군당국의 조작에 의한 것임을 폭로하면서 일찌감치 문제의원(?)으로 낙인이 찍혔다.
72년 유신 선포직후 군당국에 연행돼 유신에 협력할 것을 강요받았으나 소신을 굽히지 않은 이씨는 이후 1년동안 7차례나 연행돼 고문에 시달렸다.
고문도중 한때 혀를 깨물고 자결을 시도할때 부러진 의치를 이씨의 부인 권혁모씨(60)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이후 박정희정권은 물론 80년 신군부로부터 영입을 제의받았으나 이씨는 모두 거절하고 일체의 공직활동을 중단한채 칩거해오다 고문 후유증에 폐렴까지 겹쳐 3개월간의 투병끝에 24일 숨졌다. 8대 국회의원시절 이씨의 보좌관을 지냈던 박종화씨(61)는 『고인의 생전에 실천으로 보여준 청렴과 기개는 후배들에게 「참군인」의 길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한다』고 말했다.
이씨의 유해는 26일 국립묘지 장군묘역에 안장됐다.<예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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