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방글라데시 근로자의 죽음(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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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어떤 힘든 일을 시켜도 좋으니 5년이고 10년이고 계속 일할 수 있으며 좋겠다며 아들 대학보내는 꿈을 꾸던 것이 엊그제였는데….』
24일 오전 서울 구로경찰서에서는 이날 새벽 야간근무도중 과로로 갑자기 숨진 방글라데시인 근로자 비부르로만씨(43)의 동료 스틱울라씨(24)가 돈벌러 왔다가 이국에서 숨진 동료의 죽음을 애석해 하고 있었다.
가난한 나라중 하나인 방글라데시인 로만씨가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허드렛 일로도 열배는 더 벌 수 있다」는 한국에 도착한 것은 지난해 4월.
그는 곧바로 영세 플래스틱 성형공장에 취직,하루 12시간씩 일하는 희망의 생활을 시작했다.
월 40만원의 임금이었지만 고국 방글라데시에선 몇달을 일해도 만져볼 수 없는 큰돈이어서 그는 일이 힘든 줄을 몰라했고 최근엔 돈이 모이자 『한국에서 번 돈으로 자녀들을 대학에 진학시키겠다』는 꿈을 밝히기도 했다고 그의 친구들은 전하고 있다.
한푼이라도 더 모으려는 욕심에 로만씨는 지난달초 회사측에 월급을 8만원 더 올려받는 조건으로 야간근무를 자청해 오후 7시부터 이튼날 아침 7시까지 밤샘작업을 시작했다.
밤마다 사출기에서 나오는 플래스틱 성형용기를 상자에 옮겨 담는 일을 하던 로만씨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몸이 지르는 비명을 듣지 못했다.
밤샘작업 한달만인 24일 새벽 로만씨는 사출기앞에서 숨을 거두었다.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였다.
역시 밤일을 하는 동료 방글라데시 근로자들의 애석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를 죽인 것은 과로가 아니라 이렇게 열심히 일하려는 국민들의 근면에도 불구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연 2백3달러(약 16만원) 밖에 안되는 그의 조국의 가난이라는 사실에 아픈 마음을 느낀다.
그의 죽음은 또 중동에서 달러를 벌기위해 혹독한 무더위속에서의 노동도 감수해야 했던 우리나라 근로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나라의 경제력이 없이는 국민의 인간다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냉엄한 현실이 새삼스러웠다. 로만씨에게 저승에서나마 풍요가 있기를 빈다.<강찬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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