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안병영 부총리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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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나는 '국민 코드'라고 생각한다."

안병영( 安秉永) 교육 부총리께서는 최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정책 전문성과 합리성을 갖고 교육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열망을 바르게 수용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하셨지요. 심한 고통과 좌절감을 안겨 주는 교육 문제를 제대로 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았습니다.

부총리께선 입각 전에 한 언론 기고에서 현 정권을 "코드에 의한 정치, 아마추어리즘의 전형"이라고 비판하셨습니다. 프로를 자처하는 당신은 조직 장악력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의 기대가 자못 큽니다.

우선 많은 국민은 숱한 말보다 행동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갈수록 경쟁력이 떨어지는 교육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하면 국가의 미래가 없다는 위기감 때문입니다. 저는 교육위기론을 접할 때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를 연상하곤 합니다.

고질적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수술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가 곪아 터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컸으나 손놓고 있다가 결국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맞았습니다. 위기가 닥친 후에야 금융.기업 구조조정을 하느라 법석을 떨었습니다. 말만 무성한 채 실천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육은 어떤가요. 곳곳에서 위기의 징후가 뚜렷합니다. 공교육은 아사 직전이고 교육 수요자들이 엄청난 사교육비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위기의 파열음을 계속 무시하면 교육은 무너집니다. 따라서 다양한 의견수렴을 거쳐 결정한 내용은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절실합니다.

둘째, 시장을 조속히 살려야 합니다. 교육 수요자들이 원하는데도 공급이 따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수요자들에게 선택권을 줘야 합니다. 사립은 사립답게, 공립은 공립답게 만드는 일이 시급합니다. 그런 다음 학교가 학생들에게서 선택받지 못하면 존재 이유가 없다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 주십시오. 그러면 교육 현장의 세력 균형이 교육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바뀌게 됩니다.

일선 공립학교에서도 경쟁 체제를 과감히 도입해 경쟁력 없는 학교나 교사는 과감히 솎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학교는 물론 교사도 주기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평가도, 경쟁도 담장 밖의 얘기로 치부해 버리면 교육 경쟁력은 요원합니다.

셋째, '엘리트 교육'에 대한 소신을 분명히 밝혀 주십시오. 부총리께서는 "공교육과 엘리트교육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평준화 보완과 엘리트 교육의 보완을 위해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를 확대할 것이냐는 질문엔 구체적인 대답을 피했습니다. 평준화 정책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신다면 엘리트 교육의 청사진을 조속히 제시하셔야 합니다. 천재 한 명이 1만명을 먹여 살린다지 않습니까. 중앙정부가 이런저런 핑계로 추진하지 못하니 경기도가 '특목고 벨트'를 만든다고 합니다. 이래선 안 됩니다.

아울러 공교육 내실화를 위한 '교육 로드맵'에 획기적인 내용을 담으십시오. 그래야 사교육비를 확 줄일 수 있습니다.

넷째, 교육시장의 개방을 서둘러야 합니다. 지금처럼 문을 여는 시늉만 할 게 아니라 확실히 열어 젖혀 수요자들이 선진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도토리 키재기식 경쟁에 안주하는 학교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됩니다. 지구촌 곳곳에선 '개방'과 '경쟁'을 통한 교육혁명이 한창입니다. 이런 글로벌 시대에 교육 쇄국이 웬 말입니까.

부디 '국민 코드'를 잘 읽어 성공한 교육 부총리로 남으시길 바랍니다.

박의준 정책기획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