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보선 떠맡아 「굴신」벗고 활동재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김윤환의원/떠돌던 허주 “바빠졌다”/민자수뇌 잇단 접촉 “개혁심판 필승”선도/“1년뒤엔 기회온다” 대망론펴며 TK독려
대구 동을지역 보궐선거가 확정되면서 TK의 대표격인 김윤환의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 의원은 「허주」라는 자신의 아호처럼 지난 대선이후 현실정치의 짐을 벗은 빈 배처럼 유럽으로,일본으로 표표히 떠돌며 지내왔다. 재산공개 파동으로 자신과 같은 TK지역 출신 의원들이 정치적 사형을 선고받을 때에도 그는 『우리는 기득권,개혁대상』이라는 말로 오히려 희생을 감수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던 그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박준규 전 국회의장이 미국에서 의원직 사퇴서를 보내옴에 따라 TK의 본산인 대구의 시험대로 등장하면서부터다. 민자당에서는 공천후보를 물색하는 단계에서부터 김 의원을 찾아 자문을 구하는 예우를 갖췄다. 황명수 사무총장이 그와 보선문제를 협의했다.
내부적으로 노동일교수(경북대)로 후보가 확정된 지난 3일에는 청와대에서 직접 그를 찾았다. 대통령이 당직자인 민정계 중진들을 불러 독대한 적은 최근 몇차례 있었지만 당직이 없는 중진을 불러 오찬을 함께 한 것은 매우 이레적인 일이라 할수 있다. 김 의원은 『그저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이것저것 했다』고만 말한다. 오찬을 겸한 자리였던 만큼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대화중에는 대구 보궐선거를 포함해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개혁정국에 대한 TK지역정서 등이 광범하게 논의됐다고 한다. 김 의원은 특히 개혁과 사정을 「TK의 고통분담」으로 받아들이는 지역정서를 상당히 상세히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회동의 의미는 한주일뒤인 지난 10일 몇가지 사례로 가시화됐다. 10일 오후 국회본회의장에서 김 의원은 예천 보선에서 당선된 민주계 심형식의원을 불러 따끔한 한마디를 했다. 심 의원이 당선직후 바로 옆 이승무의원(민정계)의 지역구에 있던 농어촌 진흥공사지부를 이 의원과 아무런 상의없이 자신의 지역구로 옮겨버린 것에 대해 경고한 것이다. 결국 심 의원은 지부를 다시 이 의원 지역구인 점촌시로 원위치시키기로 했다.
같은날 김종필대표와 오찬을 함께 했다. 민정계인 김길홍 대표비서실장과 공화계인 조부영부총장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우연인지 같은날 저녁은 민주계의 대표격인 최형우 전 사무총장과 함께 했다. 김 의원은 『그동안 서로 못만나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연락이 와 만난 것일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날의 회동은 바로 전날 민주계 모임에 이어진 것이라 의미가 심상찮다. 9일 최 전 총장의 주선으로 민주계의원 10명이 모여 자파의 단합과 함께 민정계,특히 대구보선을 앞둔 TK의원들에 대한 의무노력에 뜻을 같이 했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날 최 전 총장은 김 의원에게 보선을 포함한 당운영 전반에 걸친 민정계의 협력을 당부했다고 한다.
김 의원은 이밖에 대구­경북지역의원,새로 입당한 의원 등 여러부류의 모임을 계속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대구보선의 현장책임을 맡은 또다른 민정계 중진 김용태 전 총무와 만나 보선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그리고 주말께 일본으로 건너가 그쪽 총선을 지켜보면서 한일 의원연맹 회장으로서의 역할을 잠시 수행한뒤 다시 귀국해 보선에 주력할 것이라고 한다.
김 의원이 바빠진 이유는 짧게 봐 대구보선 때문이다. 대구보선은 여러가지로 중요하다. 지난 보선때 「개혁평가」를 내걸로 사력을 다한 명주­양야에서 패배한 쓴 경험이 있기에 대구보선은 승리할 경우 실추된 개혁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그런데 대구지역의 여론은 각종 조사결과에서 드러나듯 개혁에 가장 비판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TK세력의 보선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김 의원의 역할이 필요해진 것이다.
김 의원은 이같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게 「TK 대망론」을 펼치면서 보선지원을 독려하고 있다. 『무작정 밀어주자』가 아니라 『때를 기다리며 밀어주자』는 것이다. 『민자당 후보를 떨어뜨려 새 정부에 경고하자』는 TK일부의 독특한 정서에 맞서 새 정부와 TK와의 대립만 초래할뿐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된다는 논리로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다. 『새 정부의 개혁에 협력하면서 TK의 역할이 필요한 때를 기다리자』는게 그의 대망론 골자다.
김 의원의 이같은 대망론은 물론 대구보선에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다. 김영삼후보 지지를 선언하던 때의 대세론과 같은 맥락이다. 김 의원의 분주함은 길게 봐 이같은 대망론과 무관하지 않다. 김 의원은 『1년쯤 기다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해왔다. 그가 말하는 1년이란 내년봄 전당대회시기와 일치한다. 내년 전당대회에서는 당대표를 경선하며,새로 뽑힌 대표는 곧 이어질 지방자치 선거의 공천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실질적인 당권을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의 대표다.
대표는 표가 결정한다. 현재로서는 민정계의 표가 압도적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표가 어디로 옮겨갈지 모른다. 그래서 김 의원은 지금부터 바쁜지도 모른다.<오병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