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량 이기수-기술씨름의 진수 펼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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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민속씨름이 재미없어졌다는 말들이 들리고 있다.
1백30∼1백40㎏이 넘는 거구들이 모래판을 장악하기 시작한 80년대말 이후부터의 일이다. 몸집이 크다 보니 몸놀림이 둔하고 따라서 빠르고 다양한 기술 대신 체구를 이용한 밀어치기·배지기 위주의 단조로운 힘의 씨름이 판치게 됐다는 말이다.
따라서 다이내믹하고 전광석화 같은 묘기를 기대했던 관중들이 점점 씨름에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런 씨름판도에 단연 현란한 기술과 민첩성으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씨름꾼이 있다. 주인공은 「기술씨름의 달인」이란 애칭이 붙은 이기수(27·럭키증권).
지난 5일 천하장사대회(춘천)를 TV로 지켜본 사람이라면 『바로 이게 기술씨름이구나』하고 느꼈을 것이다.
이는 1m79㎝, 93.5㎏으로 한라급으로도 최경량이다. 그러나 이기수는 이날 16강전에서 자신보다 40㎏이나 무거운 박태석(청구·1백30㎏)을 전광석화 같은 밧다리되치기·안다리걸기로 간단치 누인 뒤 5∼6위전에서도 거구 황대웅(삼익가구·1백30㎏)에게 지긴 했지만 보기 드문 뒤집기 기술을 선보이며 한 판을 잡아내는 등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특기가 한두가지 있게 마련이나 이기수가 구사하는 기술은 차돌리기·잡채기·역배지기등 다양하다.
이날 한라급 선수중 8강에 오른 선수는 이기수 한 명뿐이었다.
진주상고·경상대를 졸업하고 90년말 럭키증권에 입단한 이기수는 그동안 두 차례 한라장사에 오른 것을 비롯, 올들어 설날전하장사대회에서 「묘기대행진」을 벌이며 5품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가 수십㎏이나 무거운 장사들을 상대로 선전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이기수는 먼저 경기시작 4∼5초내에 이들에게 끌려 들어가면 무조건 진다는 명제아래 몸을 밖으로 빼낸 뒤 정상적인 겨루기자세가 되면 자신의 빠르기와 잡채기·배지기 등 현란한 기술을 총동원해 상대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무거운 선수들과 최대한 근접한 상태에서 맞불기 위해 몸무게를 늘려보기도 했으나 선전적으로 살이 찌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포기했다고.
좋아하는 불고기를 3∼4인분씩 냄새나도록 먹어도 체중계의 바늘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대신 상대의 혼을 빼는 손·발기술을 이용해 승수를 쌓아가고 있는 것이다.
기계체조선수출신으로 고교때 전국체전에 출전했던 이기수의 운동신경은 자타가 공인한다. 지난해 스키장 강사로 있던 고교동창에게서 배운 스키 실력은 무주리조트 최난코스에서 갖은 폼을 잡으며 내려올 정도며 2년전부터 한강에서 즐기고 있는 수상스키·윈드서핑은 전문가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음악적 감각도 뛰어나 키보드(전자오르간)·색서폰·기타·대금 등 웬만한 악기는 능란하게 다룬다. 이기수는 현재 명지대 대학원에서 체육학을 전공, 2학기에 다니고 있다. 체력상 2∼3년간 현역생활을 좀더 한 뒤 대학강단에 설 수 있도록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올해연봉은 2천2백만원으로 팀내 중상위권이다. <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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