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 층 욕구 대변|『세상은 요지경』-신신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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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요즘 가장 화제를 모으는 연예인은 탤런트 신신애다. 지난달 그녀가 취입한 테이프『세상은 요지경』은 서태지와 아이들의『하여가』와 함께 레코드 가게에서는 없어서 못 팔 정도다. 신신애가 나오면 일손을 놓고 TV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쇼 프로제작진들은 그녀를 출연시키지 못해 안달이다. 졸지에 스타가 된 것이다.
대중적 스타는 동시대인의 욕구를 고스란히 투영해 놓은 거울이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이 스타가 되는가를 보면 대중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신신애의 폭발적 인기는 전혀 뜻밖이다. 그녀는 경력 10여년의 탄탄한 연기자이긴 하지만 잘생긴 얼굴을 보는 즐거움을 주진 못한다. 노래실력 또한 심금을 울려 놓을만한 것이 못 된다. 그렇다고 탁월한 유머감각으로 유쾌한 웃음을 선사해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성격은 지나칠 정도로 진지해 TV에 나와도 별로 말이 없는 편이다. 한마디로 그녀는 스타의 요건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신신애가 중·장년 층의 스타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뒤집어 생각하면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대중적 욕구가 표출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 욕구가 어떤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신신애의 특징들을 보자. 평범한 30대의 얼굴, 일제 시대 풍의 가창법, 정형화되지 않은 격한 춤, 그리고 북한이나 연변 여자를 연상시키는 무표정과 작위적 웃음의 극단적 교차.
이를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그녀는 나와 비슷하거나 훨씬 덜 세련된 노래와 춤을 가지고도 남들 앞에서 서태지처럼 뛰어 놀 수 있는 여자다. 나이가 들면 점잖아야 된다는 통념 때문에, 혹은 남들 앞에 나설 재능이 없어서 룸살롱처럼 밀폐된 공간이 아니면 양껏 욕구발산을 하지 못했던 중년들에게 신신애는 억눌린 그들의 욕구를 시원스럽게 터 뜨려준다. 더구나 그녀를 통한 욕구의 대리만족은 황신혜의 미모, 조용필의 가창력처럼 흉내낼 수 없는 스타를 통하는 것보다 훨씬 현실 가능한 것처럼 보여 대중들이 느끼는 만족도도 더 크다. 그 동안 TV를 비롯한 대중문화에서 소외당하고 있던 중년들로서는 오랜만에 그들의「서태지」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10대들이 서태지에게 열광하는 것과 중년들이 신신애를 찾는 것 사이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서태지의 팬들은 서태지가 되고 싶어하지만 신신애의 팬들은 그렇지 않다. 서태지의 팬들이 맹목적이라면 신신애에 대한 열광의 밑바닥에는 비아냥거림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감히 내가 보여 줄 수 없는, 혹은 보여주기 싫은 욕구의 대변자로서 신신애에게 열광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점잖지 않음과 세련되지 못함을 조롱하면서 우월감을 느끼며 안도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신애에 대한 사랑은 편의적인 애정이며 대중의 새로운 스타상은 우상이 아니라 바로 이 같은「악역」이라고 할 수 있을 듯싶다.
이런 현상은 신신애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아들과 딸』『굿모닝 영동』의 백일섭,『한강뻐꾸기』의 박인환 등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연기자들은 대부분「친근감은 가지만 조롱거리도 많은」코믹배역을 맡아 히트한 것이 공통점이다. 그 만큼 대중들은 조롱할 대상을 찾는데 몰두해 있다.
「신신애 신드롬」으로 요약되는 이런 현상은 가학적인 방법이 아니면 그 출구를 찾지 못 할 정도로 오랫동안의 억압으로 심하게 뒤틀린 우리 대중욕구의 현주소를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 <남재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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