샅바자락에 밴 땀으로 가난을 씻고…|백승일 눈물의 ″17세 평천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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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소년 천하장사 백승일은 연방 웃고 있었지만 대구 집에서 이를 지켜보던 어머니(안순자·46)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최연소로 모래판을 호령한 백승일은 자신이 올라탄 천하장사 꽃가마가 무슨 의미인줄도 모르고 어안이 벙벙한 채 태연한 표정이었다.
생후 17년3개월(76년3월23일생). 또래의 아이들은 고교2년생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청소년기의 꿈과 낭만을 노래할 나이. 그러나 백승일은 그런 정상적인 길(?)을 외면하고 지난해 겨울 전문샅바꾼의 길을 스스로 선택했다. 순천상고 1년을 마친 후 물 설고 낯선, 연고도 없는 달구벌 청구씨름단에 제2의 둥지를 튼 것이다.
그 후 6개월. 백승일은 일부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름만으로도 샅바 잡은 손의 힘이 빠진다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모조리 뉘고 최연소로 천하장사에 등극했다. 지금까지는 90년3월12일 천하장사 타이틀을 차지했던 강호동의 18세7개월.
5일 시상식후 신명수 코치가 대구 어머니 집으로 전화를 연결해 줬다. 『장하다. 다친데는 없느냐』는 말뿐 어머니는 흐느끼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책과 연필 대신 샅바를 잡고 고생하는 아들. 집을 옆에 두고도 매일 반복되는 합숙훈련으로 주말이 아니면 집에 들르지 못하는 막내아들(백승일은 2남1녀 중 막내). 그런 아들이 고난을 이겨내고 천하장사에 등극하는 순간 어머니가 자식에게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었을까.
지난해 학업을 중단하고 민속씨름으로 방향을 틀려하자 비난도 쏟아졌다. 돈의 노예가 되려느냐는 게 이유. 계약금 1억5천만원, 연봉 2천만원을 두고 한 말이었다. 갈등도 많았다. 그러나 씨름이 좋고 또 나로 인해 집안형편이 다소나마 펼 수 있다면, 무엇보다 어머니의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다면…결론은 쉽게 나왔다.
가난과 가정불안으로 국교3년 때부터 아버지와 떨어져 살고 있는 백승일. 백승일네는 조상 대대로 뼈를 묻어온 순천 땅을 등지고 회사측의 배려로 지난해 말 네 식구가 대구시 황금동 경남타운아파트로 이사했다. 남해고속도로 상에서 백승일은 다짐했다고 한다. 기필코 2년 안에 천하장사에 올라 기쁨을 어머니께 드리겠다고.
그 꿈은 예상보다 빨리 이루어졌다. 백승일은 우승 직후 『모든 공을 어머니께 드린다』며 『천하장사가 되면 고기나 한 근 사달라던 어머니의 얼굴을 빨리 보고 싶다』고 비로소 나이티를 냈다. 물론 상금으로 받은 1천5백만원(세금 30%제외)도 전액 어머니께 드린다.
백승일은 원래 육상 단거리 선수였다. 순천 성동국교시절 키가 큰데다 몸이 날렵해 트랙선수로는 제격이었던 것. 그러나 3학년 때부터 몸이 커져 5학년이 되면서 선생님의 권유로 씨름으로 전향했다. 이수중에 입학해선 1m85㎝·1백30㎏(현재 1백35㎏)으로 더욱 늘었다. 중3때는 아마 전관왕(5관왕)에 오르며 스카우트 열풍의 핵이 됐다.
전문가들은 백승일의 「롱런」을 점친다. 체구에 비해 몸이 부드럽고. 빠르며 무엇보다 힘이 특출나기 때문. 신 코치는 『아직 근육이 굳지(형성되지)않은 상태인데도 힘이 놀랍다.
드는 기술을 연마하고 경력만 쌓는다면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에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춘천=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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