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 독 외고 지휘자 쿠르트 마주르|「뉴욕 필」콧대 꺾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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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얼마 전 창단 1백50주년기념 연주회를 가졌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지휘자가 연주를 중단하고 2천7백여 청중 쪽으로 몸을 돌렸다.
『왜 여러분들은 그토록 끈질기게 기침을 하십니까? 지금 연주를 하고 있는 우리 단원들은 기침을 하지 않습니다. 이유를 아십니까? 우리는 연주에 완전히 몰두해 있어 기침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연주하는 곡목은 찰스아이브스의「대답 없는 질문」입니다.
계속 기침을 하시면 당신들은 결코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지휘자는 다시 몸을 돌려 지휘를 계속했다. 이후 연주가 끝날 때까지 단 한번의 기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연주가 끝나자 청중들은 일제히 기립,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날 미국 최고·최고의 교향악단 뉴욕 필하모닉을 지휘하면서 까다롭기로 이름난 미국 청중들을 이같은 에피소드로 매료시킨 주인공은 쿠르트 마주르(65)였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이듬해인 90년 4월부터 뉴욕 필을 상임 지휘하고 있는 마주르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타계한 이후 현존하는 독일 최고의 지휘자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외모와 관련해「마르틴 루터의 4촌」「헤밍웨이의 분신」「말년의 브람스」등으로 불리며 1m92cm의 장신인 그는 뉴욕타임스로부터「푸르트벵글러·토스카니니·번스타인, 그리고 비스마르크를 합친 인물」이란 찬사를 들으며 외국 지휘자에 대해 콧대 높기로 유명한 뉴욕 필을 완전 장악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지는 이어『마주르가 이끄는 뉴욕 필은 지난 몇 년간, 아마도 지난 수십 년간 보다 세련되고 영감이 넘치는 연주를 하고 있다』고 극찬, 마주르가 전임자였던 주빈 메타는 물론 레너드번스타 인까지도 능가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는 5일 지난 70년부터 상임지휘자로 있는 독일 최 점의 교향악단 라이프치히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창단 2백50주년 기념연주회를 위해 금의환향, 구스타프말러의 교향곡『9번』을 지휘해 고향 팬들로부터 아낌없는 갈채를 받았다.
과거 동독 공산정권시절에 리히 호네커의 극진한 배려를 받았던 그가 통일 후에도 독일인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전력과 관련,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많은 구 동독 출신 저명인사들과 좋은 비교가 된다.
독일인들은 이미 그를 브루노 발터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그리고 카라얀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마주르는 이미 살아 있는 전설이 돼 가고 있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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