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개방예시 배경과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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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거세지는 미·EC등 통상압력 능동대처/개방 따른 국내산업 충격 완화 효과도
최근에 정부가 취한 경제관련 조처중에서 이번에 예시된 5개년간의 외국인투자 개방 일정만큼 전향적인 것도 드물다. 그만큼 이번 재무부의 발표는 국내외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금융산업 개편일정이나 이번의 외국인투자 개방일정 등 주요한 사안마다 5년 앞의 일정을 다 밝히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이냐는 원론적인 의문을 떠올릴 수는 있지만,이웃 대국인 중국 등 지구촌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속도와 한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조조정의 마찰을 생각해보면 정부의 이번 개방예시는 국내외의 상황을 고려한 적절한 「선수」라 할만하다. 예컨대 국내 대기업 그룹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수단의 하나로 「분할 명령권」이라는 학계의 발상까지 나오는 마당에 그같은 수단보다는 개방을 통한 경쟁이 백번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또 빗장만 단단히 잠그고 있다가 보험·영화·담배를 필두로 슈퍼 301조라는 당시로서는 생소하기 짝이 없는 미국의 통상압력을 받아 정부와 국내업계 모두가 당혹해했던 것이 지난 87∼88년의 일이었는데,이후 외국기업의 대한 투자는 90년을 고비로 더욱 줄어들어 지난해에는 사상 처음으로 기술도입건수 자체가 줄어드는 지경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때 한국을 좋은 투자처로 생각했던 외국 기업들은 중국이나 동남아의 다른 나라로 현지투자를 돌리고 있다.
더구나 정부는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공식서한을 보내 오는 96년께의 정회원 가입의사를 밝혀놓고 그에 대비한 외환·자본시장의 개방일정을 생각하고 있는 참이다.
정부의 이번 발표를 클린턴 미 대통령의 방한과 직결시킬 필요는 없다. 이번 발표는 지난 3월부터 우리정부 스스로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작업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공동체(EC) 등 외국의 포괄적인 통상압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우리측의 전략인 것만은 분명하고 여기에 재무부 당국자의 설명대로 투자개방에 의한 국내산업의 충격을 줄이고 외국기업의 잠재적인 대한투자를 유치한다는 효과도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남은 과제는 본격적인 개방시대를 맞아 국내 기업들이 세계의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노력과 제도정비를 미리미리 서두르는 일일 뿐이다.<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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