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일본의 정치격동(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일본이 전후 최대의 정치위기를 맞고 있다. 18일 일본 중의원에서는 집권 자민당의 일부 세력이 야당에 동조함으로써 미야자와(궁택) 정권 불신임안이 가결되고 이에 맞서 정부도 중의원을 해산하기에 이르렀다.
약 40년간 집권해온 자민당은 이미 11명의 의원이 탈당한데 이어 반기를 든 하타(우전)파 역시 신당결성을 선언함으로써 사실상 분당상태에 빠졌다. 이에따라 7월총선에서 자민당이 다시 과반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관해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자민당 일당지배시대가 종언을 고하는게 아니냐는 관측도 유력하게 나오고 있다. 자민당은 분열과 신당의 출현,여기에 각 정당과 파벌간의 어지러운 합종연형으로 일본정계 역시 커다란 판도변화를 보일게 틀림없다. 일본으로서는 전후 최대의 정치전환기를 겪고 있는 셈이다.
일본정치의 이런 격동은 결국 일본 보수세력의 한계에서 오는 것이다. 냉전체제 속에서 범보수세력의 연합으로 출범한 자민당은 서방의 일원으로 경제발전을 희구하는 일본 국민의 좌파에 대한 불안으로 거의 대안세력이 없는 상태로 장기집권을 해왔다. 그러나 냉전구조가 무너지면서 이런 보수지배구도 자체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장기집권에 대한 일본국민의 염증도 높아졌던 것이다.
더욱 직접적인 계기는 일본정계의 심각한 부패문제라고 할 수 있다. 70년대 다나카(전중) 총리가 록히드사건으로 구속까지 된 후에도 리크루트사건으로 다케시다(죽하)정권이 무너지고,최근엔 사가와규빈 사건으로 가네마루(김환)가 구속되는 등 일본정계에는 뇌물추문이 끊일새가 없었다. 이에따라 정권 지지도가 20%대로 급격히 떨어지고 소장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가 급속히 세력을 확대해 나갔던 것이다. 이번에 미야자와 정권에 대한 불신임안도 총리가 정치개혁 공약을 어겼기 때문에 제기된 것이다.
일본 정국의 이런 혼란은 우리와도 무관한 일이 아니다. 당장 한일정부간 타결해야할 심각한 현안은 없으나 일본정부나 기업 등이 지금 어떤 문제건 중요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처지에 빠짐으로써 각종 교섭·거래 등이 동결·위축되는 현상은 불가피할 것이다.
무엇 보다 냉전체제를 대신해 새로 자리잡을 동북아의 새 질서가 일본의 저런 정치격동에 따라 어떻게 형성될지,그런속에서 한국의 역할과 국익을 최대화하는 우리의 전략과 외교방안은 무엇인지에 관해 정부와 각계가 심각히 검토하고 깊이 통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일본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부패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로서는 집권세력의 도덕성문제에 관해서도 새삼 자세를 가다듬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새 정부아래서 발빠른 사정작업을 하고 있지만 우리 역시 깨끗한 정치를 위한 정치개혁의 과제를 안고 있다. 일본 집권세력이 왜 정치개혁에 실패했는지를 살피고 우리는 실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