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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비공약(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실세의원을 배출해야 핵폐기물처리장 유치를 막을 수 있다.』
『나는 이 지역 핵폐기물처리장 건립반대운동의 선봉장으로 나서겠으며 만약 저지에 실패할 경우 의원직을 사퇴하겠다.』
이번 명주­양양 보궐선거에 출마한 여야후보가 유세장에서 역설한 공약중에 주목할만한 내용이다. 이미 당락이 팔자름난 보선얘기를 새삼스럽게 끄집어내는 까닭은 그냥 지나쳐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는 생각에서다. 투표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시비가 있을까봐 지금까지 참아왔을 뿐이다.
이들의 발언은 세상없어도 자기 지역에 만은 핵폐기물처리장 같은 혐오시설을 세우지 못하게 하겠다는 단호한 결의와 투지의 천명이다. 현지 유권자들에겐 우선은 반갑고 고마운 약속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면 다들 꺼리는 혐오시설은 어디로 가라는 말인가. 국내 어느 지역도 그곳 출신 국회의원이 없는 데가 없다. 2백37명의 지역구의원들이 몽땅 혐오시설의 자기선거구역내 설치를 반대하고 나선다면 어쩌겠다는 건가. 그런 투지를 보이지 않는 의원들은 유권자들이 애향심도 없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 좀팽이 쯤으로 몰아붙일 판이니 말이다. 이들 후보들의 생각없는 혐오시설기피증(님비) 공약 때문에 당장 안면도나 김포,서울의 목동이나 상계동 출신 의원들의 입장이 난처하게 되지 않겠는가.
지난 91년말 현재 9곳의 국내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중·저준위 핵폐기물 3만4천드럼 가량이 마땅한 처리장을 확보하지 못해 발전소 근처 지하에 임시로 저장돼 있으나 그나마도 포화상태다. 또 일단 사용이 끝났지만 재처리해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연료도 6백여t 가까이 임시저장소에 보관돼 있는 실정이다. 전국적으로 일반쓰레기 9만3천t과 매일 가정·공장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허가된 처리장의 태부족으로 공장이 조업단축을 하거나 휴업사태를 면치못할 지경이어서 쓰레기가 산이나 들판에 불법으로 마구 버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주민들의 반대로 폐기물처리장 설치가 어려워 사태가 이처럼 심각한데도 지역이기심을 자극해서라도 금배지만 따면 그만이라고 무분별하게 공약을 내건 것이다. 이런 사려깊지 못한 선량이 의정단상에서는 국가환경정책에 어떤 입장을 취할지 걱정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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