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김태헌
나는 엄마를 따라 웃었다. 역시 우리 엄마다웠다. 엄마가 즐겁게 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솔직히 엄마가 교문에 엿을 붙여놓고 기도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내 마음은 얼마나 불편했을까?
수능 시험을 마치고 교문을 나왔다. 교문 밖에는 엄마들이 우르르 몰려 서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엄마를 찾았다. 교문 입구에서 엄마가 나처럼 목을 길게 빼고 나를 찾고 있었다. 남극의 어느 해변, 펭귄들이 해변을 가득 뒤덮으며 새까맣게 몰려 있을 때 나는 참 이상한 생각이 들었더랬다. 어떻게 저렇게 똑같은 펭귄들 사이에서 모두가 제 새끼를 찾아갈 수가 있는 걸까? 그런데 그날 나는 알았다. 비슷비슷한 우리들이 몰려나와도 비슷비슷하게 생긴 엄마들은 각자 자신들의 아이들을 찾아낸다는 것을. 아마도 외계인이 탄 비행접시가 오늘 한국의 상공에서 우리들을 찍어갔다면 그들만의 프로그램인 ‘코스모스 지오그래픽’이란 프로그램에서 우리들을 두고 신기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외계인 소녀는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 엄마에게 물을지도 모른다.
“엄마 저 지구라는 행성에 인간이라는 종족의 뇌 속에는 본능적으로 초능력 감지기가 있나 봐. 내가 보기엔 다 똑같이 생겼는데 잘도 자기 새끼들을 찾아내고 있어. 난 지구의 새들이라는 종족이 먼 거리를 철 따라 정확히 운행하는 것보다 저게 더 큰 초능력이라고 생각해.”
엄마의 입술은 추위 속에서 오래 서 있어서인지 파르스름했다. 나를 보자 엄마는 무슨 에베레스트에서 내려오는 딸이라도 맞듯이 약간은 걱정스럽고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춥다 어서 차에 타자” 하며 나를 끌었다.
“술 먹었다면서? 운전할 수 있어?”
내가 묻자 엄마는 차에 올라타 두 손을 비비더니 말했다.
“아이구, 아줌마들하고 내가 그런 약속을 한 게 잘못이지. 낮술은커녕 점심도 못 먹었다. 참 나… 지네들이 애태운다고 자식들이 시험을 잘 보느냔 말이야. 그래서 엄마 그냥 다니엘 아저씨랑 밥 먹었어. 소주 딱 한잔 했어. 그리고 친구들한테 문자를 보냈지. 나 혼자 술 먹는다 얘들아…. 그랬더니 문자들이 오더라구. 그래 너 잘났다!”
엄마는 한참을 웃었다. 엄마의 친한 친구들 중 두 명이 올해 나와 함께 수능시험을 봤다. 엄마가 가끔 하는 말로 그 애들은 아주 공부를 잘한다고 했다.
“엄마가 이건 정말인데 너한테 고맙더라구. 그 애들은 밥도 못 먹었대. 점수 1, 2점에 대학이 바뀔지도 모르니까. 엄마로 말하자면 아주 편안했어.”
내가 뉴질랜드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한국 학교에 전학해서 고입 시험을 볼 때, 엄마는 내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자격을 얻었다고 기뻐하며 친구들에게 한턱을 냈다고 했다. 엄마 친구들의 아이들은 이미 전교에서 1, 2등을 하면서 일류 외국어 고등학교에 합격했는데 말이다. 엄마 친구인 아줌마는 나중에 그 일을 회상하면서 내게 말했다.
“맛있는 거 얻어먹으면서 말이야. 약간 기분이 이상했단다. 위녕, 한턱을 낼 사람은 우리들이었는데, 네 엄마는 우리들 중에 네가 제일 좋은 고등학교에 합격한 것처럼 기뻐했고, 우리들은 왠지 너희 엄마가 행여라도 주눅 들까봐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센 경쟁을 거쳐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했는지 자랑도 못했단다.”
그러자 엄마는 대꾸했었다.
“너희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지만 위녕은 다른 걸 잘해. 으음… 그게 뭔지 나는 아직 모르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