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독수리 형제 "잠실서 꼭 날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미국의 록그룹 '이글스(Eagles)'의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는 "깜깜한 사막의 고속도로 위에서…"라는 음울한 분위기로 시작한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출신 내야수 홍원기(31)와 포수 강인권(32)이 두산으로 팀을 옮겨 잠실 야구장에 새 둥지를 틀 때의 심정도 비슷했다. 홍원기는 "밤중에 스포츠 뉴스를 보다가 두산으로 트레이드됐다는 소식을 알게 돼 억울하고, 서러워 마누라와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회고했다.

1999년 홍원기에 이어 2002년 강인권이 두산으로 옮겨오자 두 선수에겐 '호텔 캘리포니아', '독수리 형제'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한화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둘은 훈련 때면 붙어다니고, 휴가철이면 가족들과 함께 여행갈 정도로 우정이 깊다.

두산의 올시즌 훈련은 13일 시작한다. 그러나 요즘 잠실구장은 두 선수의 거친 숨소리로 가득하다. 오전 10시면 어김없이 만나 네시간 이상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포지션은 다르지만 웨이트 트레이닝, 타격훈련, 캐치볼까지 잠시도 떨어지는 법이 없다. 서른을 넘긴 두 선수가 지난해 시즌 직후인 10월 말부터 지금까지 1주일에 다섯번 이상 꼬박꼬박 훈련장을 찾은 것은 이례적이다. 크리스마스나 송년회는 이들에게 사치였다. 강인권은 "시즌 끝나고 가족과 해외여행 가려던 약속을 깼다. 지난해 8월 공에 맞아 오른손 뼈가 부러져 쉬는 바람에 겨울훈련을 못 하면 끝이라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정말 올시즌은 두 선수에게 절박하다. '만능 내야수' 홍원기는 지난해 데뷔 8년 만에 3루수로 골든 글러브 후보에 오르며 정착하는 듯했으나 거포 김동주가 3루 복귀를 선언, 언제 떠돌이가 될지 모르는 처지다. 든든한 백업포수로 낙점 받았던 강인권에겐 최근 새로 트레이드돼 온 유망주 채상병(25)의 존재가 위협적이다.

두산 구단은 지난해 말 차례로 이들에게 주장을 맡아줄 것을 제의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거절했다. 홍원기는 "올해는 모든 것을 걸고 뛰어야 할 때다. 한가하게 노후를 보장받는 자리에는 가기 싫다"고 말했다. 강인권은 노장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난생 처음 알록달록하게 머리를 염색하기도 했다.

김종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