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이 하버드 대 최우등 졸업|「자식농사」성공에 "싱글벙글"-영화배우협회장 남궁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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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근 아들 홍정욱군(23)이 미국 최고의 명문 하버드 대학에서 최고우등상 등 3개의 상을 석권하면서 졸업하는 영예를 안아 영화배우 남궁원씨(59·본명 홍경일)는 물론 기쁘기는 하지만 내심으로는 지나치게 매스컴에서 크게 다루어주는 것을 영 부담스러워 한다.
『이제 인생의 첫발을 내딛는 아이인데 혹시라도 너무 부담을 주게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것이 그의 걱정이다.
정욱군이 좋다는 상이란 상은 다 휩쓸면서 하버드를 졸업했다는 소식에 여기저기서 그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는 그는 공부하는데 무슨 굉장한 비법이 따로 있겠느냐고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냥 유치원 다닐 때부터 책 잃는 훈련을 꾸준히 시킨 것 외에는 특별히 남들과 다르게 교육시킨 젓은 없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입시경쟁이 치열한 우리나라에선 책 읽는 훈련을 소홀히 하는 것 같아 일찍부터 책읽기의 중요성을 아이들에게 강조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또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것은 그냥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자신의 교육원칙이었다고 말한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이라면 그만큼 배우는 것이 있다는게 그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막상 축하나 격려 전화·축전이 각계에서 쏟아져 들어오자『이 녀석이 큰 일을 하긴 한 모양이구나』하고 뒤늦게 실감이 나더라는 그는 『그래도 가장 기뻤던 것은 동료 영화인들이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좋아하는 것을 볼 때였다』고 말한다.
힘든 영화의 길을 함께 걷는 동료들이 「영화계의 경사」라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영화인들간의 따뜻한 정이 새삼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가 처음 영화에 데뷔한 것은 1958년 노필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그 밤이 다시 오면』 이었다.
당시 이 영화의 제작자인 이재명씨가 친구의 아버지였다는 것이 인연이 돼 출연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35년을 그는 한국 영화의 영광과 좌절을 함께 맛보면서 일선에서 활동해왔다.
그는 70년대 초부터 TV의 위력에 밀려 한국영화가 서서히 관객을 잃어 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직배 미국영화에 밀려 여전치 극장가에서 찬밥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는 그러나 아직도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사업 때문에 바쁜 요즘도 적어도 1년에 한편 정도는 꼭 출연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현재 네덜란드 엔지니어링 회사의 한국 지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부업으로 서초동에 중국식당을 하나 운영하고 있다.
사업가로서도 제법 성공한 축에 들지만 그는 아직도 사람들에게 영화배우 남궁원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불멸의 스타」라는 식으로보다는 그저 상당히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도『성실한 연기자였다』고 사람들이 자기를 회고해 주기를 그는 희망한다.
그 동안 4백여 편의 영화에 출연해온 그는 자신의 대표작으로 유현목 감독의『순교자』 (65년), 황혜미 감독의 『첫 경험』(70년), 신상옥 감독의 『전쟁과 인간』(71년) 등을 꼽는다.
특히 김은국씨의 소설을 영화화한 『순교자』에서의 고뇌하는 장교 역은 그를 부동의 스타로 끌어올린 계기가 됐다.
그는 또한 상복도 많은 편이어서 그 동안 대종상 주연상·조연상에다 아시아 영화제 주연상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상이란 상은 다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현재 영화배우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동료 배우들 중에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 영 가슴 아프다고 말한다.
『말로는 연기자 기근이라고들 하면서 배우들이 마음놓고 연기에 전념할 수 있는 대책마련에는 전혀 무관심한 세태가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배우협회에 등록된 1천2백명 가운데 현역으로 뛰고있는 사람은 겨우 1백명이 될까 말까 하는 수준이거든요』
배우협회장 재임 중 반드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그가 숙원으로 삼고 있는 것은 영화배우 회관의 건립이다.
수입도 변변치 못한데다가 그다지 자부심도 갖기 어려운 배우들에게 회관 운영을 통해 일정 정도 생활보조도 해주면서 영화배우라는 직업이 문화발전에 한 몫 한다는 것을 인식시켜주고 싶다는 것이다.
우수한 젊은 인력들이 영화계에 많이 입문하고 있는 현상을 볼 때 한국영화의 장래가 그다지 어둡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그는 그러나 제작편수가 해마다 줄어드는 데에는 심각한 우려를 보인다.
이에 대해 정부에서 뭔가 과감한 지원책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솔직히 말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자기나라 영화가 미국 영화와 경쟁해 이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하찮습니까. 그렇다고 우리 정서를 몽땅 미국영화에다 맞출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그는 제작자가 위험부담을 덜 느끼면서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영화에 대한 금융지원 등의 대책이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영화의 미래를 말하는 그의 열기 띤 어조에는 이것이 단순한 직업이기주의(제작편수가 많아야- 배우들도 좋아진다는)이상임을 깨닫게 하는 진한 애정이 배어 있었다. <임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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