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여성] 경희대 한방병원 송미연 교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과감한 도전 정신과 실력, 리더십으로 무장한 여성들이 한국 사회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희소성 때문에 시선이 집중되던 시대를 지나 이제 여성들은 주류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차세대 선두주자로 손꼽히는 각계의 여성들을 소개하는 '주목! 이 여성'을 연재한다.

경희대 한방병원 한방재활의학과 송미연(宋美娟.32) 교수의 휴대전화는 30분마다 알람이 울린다. "때르릉 때르릉." 논문을 쓰던 송교수가 힐끗 휴대전화에 눈길을 던진 뒤 컴퓨터 자판에 속도를 더한다.

"30분을 1유니트로 쪼개 써 보세요. 진료에 4유니트, 강의에 6유니트, 이런 식으로 시간을 사용하면 정말 효율적이에요."

*** 31세 때 최연소 교수로

지난해 31살의 나이로 경희대 한방병원의 최연소 교수로 임명돼 주변의 감탄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송교수. 동기생들이 이제 겨우 군대에 복무 중인 나이에 초고속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비결이 뭔지를 묻자 중.고등학교 때부터 몸에 밴 자신의 시간경영법을 알려준다.

크지 않은 체격에 항상 생글생글 웃는 눈매, 조리있게 말하는 솜씨까지, 한눈에 총명함이 느껴지는 송교수가 한의학 분야의 촉망받는 기대주로 떠오른 것은 비단 최연소 교수란 점 때문만은 아니다. 자연의학이라는 새로운 치료법으로 현대병인 비만에 도전하는 미개척 분야의 선두주자라는 점이 송교수를 주목하게 한다.

"자연의학이란 화학약제나 방사선 등을 사용하지 않고 환자의 자연치유력을 높여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에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말에 그가 예를 덧붙인다.

"감기에 걸리면 열이 나고 재채기가 나잖아요. 파를 먹어도 비슷하지요. 감기에 걸렸을 때 파를 듬뿍 넣은 콩나물국에 고춧가루를 넣어 먹는 것도 자연의학의 일종인 동종요법(同種療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노무현 대통령의 주치의인 스승 신현대 교수와 함께 그는 향기요법.광선치료.식이요법 등 다양한 치료법을 적용하는 자연의학을 뿌리내리는 작업에 주력해왔다. 이를 통해 당뇨병.비만 등 난치병을 극복하는 것이 그의 일차적 과제다.

"남들이 걸을 때 나는 뛰었다"고 말하는 송교수지만 지름길만을 달려온 것은 아니었다. 한의학의 입지를 국제 무대로 넓히기 위해 돌아왔다고 하는 편이 오히려 옳다. 그는 2001년 2월 박사학위를 취득하자마자 미국으로 갔다. 갓 태어난 첫째 딸을 친정 어머니에게 맡기고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다. "주변에서 모두 말렸어요. 교수로 자리잡거나 돈 버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거예요. 단 두 사람, 지도교수님과 남편만이 한번 도전해보라고 격려해 줬지요."

하지만 서양의학의 메카로 진입하는 것은 첫걸음부터 쉽지 않았다. 한의사를 의사로 인정하지 않는 미국 풍토에서 미 컬럼비아대학 의과대학의 박사후 과정에 들어가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한 반년 지나니 미국인 동료들이 '한국 여자는 다 그렇게 독종이냐'고 물어서 한바탕 웃었어요. 한의학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잠이 올 리가 없었죠."

*** 비만.당뇨병 극복 도전

그래서 미국에 체류한 2년 동안 남들은 일년에 한편도 못 쓴다는 SCI(Science Citation Index,과학기술논문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된 저널)급 논문을 5편이나 썼다. 그 중 한편은 미국의 유명교수.의사와 함께 공저로 출판돼 유수한 의과대학의 필독서가 됐다. 미국 학회에는 네차례나 발표를 했다.

치과의사인 남편 임용택(40)씨의 외조와 친정 어머니 덕에 오늘날의 자신이 있었다고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자신감 넘치던 그이지만 미래의 희망을 물으니 잠시 머뭇거렸다. "한의학으로 노벨의학상을 타는 게 꿈"이라며 약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다. 하지만 그가 곧 한마디를 덧붙였다. "꿈은 이뤄진다는 게 제 좌우명이니 언젠가는 이뤄지겠지요."

문경란 여성전문기자<moonk21@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