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결의로 투자 촉진될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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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기활성화의 핵을 이루는 기업의 설비투자가 좀체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작년 4·4분기와 금년 1·4분기에 연거푸 10%대의 감소세를 보인데 이어 4월에도 회복의 기미를 찾아보기 어렵다. 투자동향의 유력한 지표인 기계류 내수출하와 기계류 수입허가액이 작년 4월보다 큰폭으로 줄어들었다.
경기자극에 초점을 둔 신경제 1백일 계획이 발표되고 이에따라 3·26 금리인하에 이어 온갖 경기부양 시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줄을 잇던 달이 바로 4월이었다. 그런 4월에도 설비투자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설비투자를 짓누르는 요인들이 일반의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난주에는 마침내 김영삼대통령이 경제장관 회의에서 재계가 경제활성화에 앞장설 것을 촉구하기에 이르렀고,이에 화답하듯 8일에는 전경련회장단이 재계의 투자확대와 조기집행을 결의하고 나섰다.
투자의 움직임에 큰 영향을 주는 대기업집단 총수들의 결의는 그것대로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이것은 투자여건이 아직 충분히 호전되지 않았다는 재계의 현실판단을 역설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투자의 적기라고 판단되는 상황하에서는 번거로운 결의를 거칠 필요도 없이 앞다투어 투자대열에 뛰어드는 것이 기업의 본능이다. 정부의 투자권고나 기업의 투자결의도 좋지만 보다 중요한 일은 좀 더디더라도 투자여건의 개선이라는 본질적 작업에 민관이 끈기있게 매달리는 것이다.
투자회복 지연의 원인은 전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전반적인 경기회복에 대한 기업들의 예상은 결코 밝지만은 않다. 이 예상이야말로 투자충동 점화의 관건을 이루는 것이다. 이런 경기 예상이 호전되는 시점과 동떨어진 시기에 통화의 고삐를 너무 늦춘 결과 정작 투자가 본격화할 무렵에는 통화긴축으로 인한 자금경색과 금리상승으로 오히려 투자를 저해할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통화정책을 떠나서도 정부는 신경제 가동후 금융실명제,새로운 노동정책,대재벌정책,주력업종제도 등의 제시·수정·번복을 통해 투자활성화 정책의 기대효과를 스스로 상쇄시켰다. 한쪽에서는 병주고 다른 한쪽에서는 약을 준 꼴이다. 기계설비의 주된 수입선인 일본의 통화가치가 초강세를 견지하고 있고 자동차를 비롯한 일부 산업 부문에서 악성 노사분규가 재연되고 있는 현실도 투자회복에는 만만치 않은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투자를 살리는 시책과 위축시키는 시책의 앞뒤를 분명하게 가려야 하고,그것을 가릴줄 아는 정부의 안목을 기업들이 믿도록 해야한다. 이와함께 통화·재정 양면의 각종 경기부양 시책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되 그 진도를 민간부문의 투자심리 회복 속도에 맞도록 하는 섬세한 조율의 기량을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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