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아베의 개헌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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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얼굴) 총리의 꿈이자 보수 세력의 구심점으로 통해온 헌법 개정이 물 건너 갈 가능성이 커졌다. 헌법 개정이 불가능해지면 일본은 군대 보유는 물론 집단적 자위권과 주변국에 대한 침공이 헌법상 계속 금지된다.

아사히 신문과 도쿄 대학은 참의원 현직 의원과 입후보자를 대상으로 지난달 공동 여론조사를 한 결과 개헌에 찬성하는 응답자가 통과에 필요한 정족수를 크게 밑도는 48%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7일 밝혔다. 일본에선 헌법을 개정하려면 국회의원 정족수의 3분의 2(67%)가 찬성해야 한다.

헌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한 2003년 이후 이뤄진 개헌 관련 설문조사에서 개헌 찬성파의 비율이 정족수에 못 미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 정치권이 보수 우경화의 길을 걸으면서 한때 개헌 찬성 비율이 70~80%에 이르기도 했다.

아베는 이런 흐름에 힘입어 개헌에 대한 국민적 동의와 바람몰이를 강화한 뒤 2010년 공식 발의해 개헌을 이룬다는 꿈을 키워왔다. 그의 희망대로 헌법이 바뀌면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자위대가 헌법상 군대로 공식화하고, 군대를 해외에 파병해 전투를 치를 수 있게 되는 것은 물론이며 선제 공격까지 가능해진다.

그러나 개헌 논의 사항 가운데 이처럼 군사력 행사와 관련된 헌법 제9조 개정 문제에는 이번 조사 결과 정치권의 반대 비율이 더욱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 비율이 26%에 그쳤고, 반대 비율은 54%에 달했다.

정치권의 흐름이 이렇게 급변하면서 개헌은 고사하고 아베 정권은 더욱 궁지에 몰릴 전망이다. 4명의 장관이 자살이나 자금 유용 등으로 물러난 데 이어 7일에는 나가세 진엔(長勢甚遠) 법무상 측이 부적절한 돈을 받았다가 돌려준 것으로 드러나 정권의 도덕성까지 땅에 떨어졌다. 아베 정권의 지지도는 최근 20%대 수준까지 하락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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