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특구’로 지정돼야 살기가 좋아진다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행정자치부가 전국 30개 마을을 ‘살기 좋은 지역특구’로 지정해 교육·의료·환경·주택 등의 면에서 고품격 생활여건을 조성하겠다고 한다. 행자부가 특구 지정 대상으로 꼽은 마을들을 보면 이미 주민 스스로 지역 특성을 살려 각종 특화사업을 벌이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강진의 청자마을이나, 함평의 나비마을, 보은·기장 등의 생태체험마을 등이다. 행자부는 특구로 지정되면 47개 법률, 97개 특례 가운데 필요한 특례를 선택해 규제를 풀어주겠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라도 해당 지역에 대한 규제가 풀려 진정 ‘살기 좋은 지역’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살기 좋은 지역이 과연 ‘특구’로 지정돼야만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다. 규제를 풀어서 살기가 좋아진다면 왜 다른 곳의 규제는 풀지 못하는가. 특구로 지정받지 못한 나머지 지역은 그냥 ‘살기 나쁜’ 지역으로 남아있어야 하는가. 특구는 어째서 50곳, 100곳이 아니라 꼭 30곳이어야 하는가. 갖가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정부가 규제를 풀어주겠다는데 딴지를 걸자는 게 아니다. 정부 스스로가 인정하듯 거미줄처럼 얽힌 각종 규제는 이제 삶의 질을 좌우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니 특구로 지정돼 규제가 풀리면 살기가 좋아진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규제를 특정 지역만 시혜를 베풀듯 선별적으로 풀어줄 것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풀 수 있도록 발상을 바꾸라는 것이다. 몇몇 특구가 아니라 전국으로 규제 완화 대상을 넓히라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위원회를 만들어 특구 지정 여부를 심의할 것이 아니라 규제 자체를 없애라는 것이다.

이미 전국 곳곳에 특구가 넘쳐난다. 인천 경제특구 같은 국가특구에다, 2004년부터 지정한 지역특구가 72곳이다. 고추장, 인삼, 사과, 대게, 녹차 등 웬만한 특산물만 있으면 지역특구로 지정됐다. 여기다 행자부가 추진한다는 살기 좋은 특구까지 생기면, 전국에 특구 아닌 곳이 드물게 될 판이다. 이럴 바에야 특구를 늘릴 게 아니라 전국의 규제를 푸는 게 낫지 않겠는가. 특구만 특별히 잘사는 곳이 아니라 전국이 살기 좋은 곳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