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서화 보면 자괴심 일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오랜만에 한국에 와보니 예전과는 달리 사람들의 얼굴이 활기차 보입니다. 모두들 조국에 대해 자긍심을 느끼는 것 같아 무척 보기 좋습니다.』
고국에서의 세번째 개인전(6월1∼18일·갤러리 현대)을 위해 6년만에 다시 서울을 찾은 재미조각가 존 배씨(한국명 배영철·56·미국 플랫 인스티튜트 교수)는 『플랫 인스티튜트에도 한국유학생이 3백여명이나 될 정도』라면서「발전된 한국」의 모습에 기꺼워한다.
독립운동가인 배민수 목사의 2남1녀중 막내로 12세때인 지난 49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갔던 그는 이듬해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분연히 고국으로 돌아온 부모 때문에 14세 때부터 고아아닌 고아신세로 낯선 이국 땅에서 살아왔다. 웨스트버지니아의 소도시에서 14세때 개인전을 열 정도로 일찍이 천재성을 보였던 그는 대학 때 현대미술의 본고장 뉴욕으로 진출한 이래 저명한 미술대학인 플랫의 순수 예술대학장 및 조각과장을 역임하는 등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87 년 드로잉전에 이어 마련한 이번 전시회는 그의 본령인 철조각 작품을 10년만에 보여주는 자리.
82년 첫 고국전에서 실처럼 가는 철심들을 이용한 그물형태의 여러 도상들을 선보였던 그는 86년 공간감을 강화하면서 회화성을 살려나간 철 조각품에서 93년 이쑤시개 정도의 철조각들을 계속 용접해 면을 형성함으로써 조형성과 양감을 높인 덩이 조각에 이르기까지 8년간에 걸친 작업의 변모과정을 보여준다.
『모든 것을 이루는 근원은 가장 작은 것이라는게 제 작업을 일관하는 사상입니다. 작은 하나로서는 별 볼일 없지만 그것이 모이면 다양한 여러 형태의 것이 되고 엄청난 힘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제 작품은 어쩌면 영문도 모른채 놀림감이 되고 따돌림받았던 어린시절 이국생활의 아픈 기억이 바탕이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국교육을 받은 부인 덕택에 모국어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됐다는 그는 한국문화에 눈을 뜬 것도 역시 그 덕분이라고 말한다.
『서울에서 조선시대 서화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하는 자괴심이 일었습니다.
세월과 상관없이 작품 속에 영원히 살아 숨쉬는 작가의 정신과 문화가 느껴진 때문이지요. 흔히 미국작가들은 작품이 작가의 손에서 떠나면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감상자의 몫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됐습니다.』【홍은희기자】^^<사진>고국서 3번째 개인전 여는 재미조각가 존 배씨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