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사정태풍 숙정한파/정씨 비호 고검장급 3명 사표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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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구속→문책→물갈이 3단계설/명예회복차원 대폭 개편 예고
슬롯머신업계 대부 정덕진씨 형제의 검찰내부 비호세력수사와 관련,26일 고검장급 검찰간부 3명이 전격 사표를 제출한 것을 신호탄으로 검찰조직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예고되고 있다.
「슬롯머신 돌풍」에 휘말려 사퇴한 고검장급 3명에 이어 수사결과에 따라 부장검사급 수명도 어떤 식으로든 조치될 가능성이 커 이들의 자리메움 인사규모가 상당할 뿐만 아니라 싫든좋든 이번 사건의 후유증을 수습하기 위해 검찰 수뇌부 및 수사지도부에 대한 문책성 인사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와대측이 그동안 여러차례에 걸쳐 검찰의 이번 사건 처리과정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심기를 드러내면서 『사정기관부터 사정하겠다』는 방침을 누차 강조해온 사실도 간과하기 어려워 자칫하면 이같은 분위기가 검찰조직 전반에 대한 숙정바람을 몰고올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낳고 있다.
○유례없는 회오리
이에 따라 검찰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슬롯머신연루자 사법처리·인사조치­수뇌부 문책인사­내부숙정으로 이어지는 「3단계의 검찰조직 물갈이」설이 그럴듯하게 입에 오르내리고 있어 조만간 검찰은 48년 검찰 창설이래 유례없는 사정·인사회오리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물갈이」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이미 사표를 제출한 이건개대전고검장·전재기법무연수원장·신건법무차관 등 고검장급 3명과 남충현인천지검강력부장,슬롯머신업자와의 유착관계가 드러나 자의건 타의건 사표를 제출할 수밖에 없는 검찰간부 수명의 자리메꿈 인사에서 시작될 것은 확실하다.
지난 3월15일 검찰 수뇌부인사를 단행한지 불과 2개월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들 고검장자리는 역대 정권아래에서 사정의 중추기관 역할을 해온 검찰조직내에서도 검찰총장을 바라보는 2인자 자리라는 점에서 인사를 미룰수도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개입 추측
특히 검찰조직내 고검장급 8명중에서 절반에 가까운 3명이 자리를 떠나게돼 검찰조직의 지휘체계 등을 감안할 때 검사장급의 승진인사가 불가피하며 연쇄적으로 검찰간부들에 대한 승진·전보인사가 예상된다.
그러나 문제는 지난 25일 단행된 해군참모총장 승진인사에서 보듯 다가올 검찰인사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서열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학연·지연 등을 감안하지 않는,그야말로 사정중추기관으로서 검찰의 위상을 되찾는 「물갈이식」이 되리라는 전망이다.
물론 이같은 전망은 상당부분 청와대에 짙게 깔린 검찰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다. 청와대에 떼밀리듯 정씨형제의 검찰내부 비호세력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이들의 사법처리 범위 등을 둘러싸고 조직내부 학연·지연을 중심으로 심각한 갈등을 그대로 노출한 바 있어 할 수 없이 청와대에서 이번 인사에 깊숙이 개입해 직접 검찰조직 개편에 나설 것이라는 추측도 나도는 상태다.
이러한 맥락에서 슬롯머신 비호세력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마무리되는대로 검찰수뇌부에 대한 문책성 또는 자진사퇴 형식의 인사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라는 이야기다.
검찰총장은 2년 임기제지만 김두희법무장관의 경우 4개월여만에 물러난 전례가 있는데다 ▲슬롯머신 비호세력 표적수사설 ▲검찰내부관련자 은폐·축소 의혹 ▲비호간부들에 대한 지휘책임을 물을 가능성도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80년 20여명 숙정
검찰일부에서조차 검찰이 이번 슬롯머신 사건으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조직을 외풍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뇌부가 자진사퇴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또 『증거가 확보안된 상태에서 수사를 서두르다 담합·표적수사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느니 『수사팀이 공명심에 사로잡혀 수사기밀을 지키지않고 마구 흘리고 다니는 바람에 수사를 망쳐놨다』는 지적도 만만찮아 수사지도부에도 문책의 불똥이 튈 가능성이 높다.
정부당국은 이와는 별도로 최근 검찰이 받고 있는 의혹의 상당부분이 40여년간 누적되어온 검찰조직의 잘못된 의식·관행·제도에 기인한다고 보고 검찰개혁작업에 착수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조직 내부에서는 김 대통령이 새정부 출범이후 『사정기관부터 사정하겠다』는 의지를 줄곧 천명해온 사실을 주목하고 이번 슬롯머신 사건을 계기로 이같은 문책성 인사와는 차원이 다른 대대적인 숙정바람이 불어닥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 경우 외부 사정기관이나 검찰 자체감찰 등을 통해 비리가 확인되는 인사들에 대해서는 대규모 인사조치가 불가피해 검찰은 80년 신군부 집권직후 20여명이 숙정된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은 셈이다.<최천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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