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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싸우고 대화하며 40년 버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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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 1~3

구종서 지음, 살림출판사,
530~575쪽, 각 권 1만5000원 

 ‘실록소설’이랄까, 역사서라 하기는 어렵지만 일반 역사소설과는 다른 독특한 형태의 작품이다.

 13세기 세계를 휩쓸던 몽골군은 1231년부터 1270년까지 6차례에 걸쳐 고려 왕조가 지배하던 이 땅을 유린하며 경주의 황룡사 9층탑을 불태우는 등 막심한 피해를 끼쳤다. 책은 우리 역사상 가장 긴 이 항몽전쟁을 조명했다.

 지은이가 언론인 출신답게 『고려사』를 비롯해 각종 사료를 섭렵하고,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 이란까지 수 차례 현지답사를 하는 등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역사를 상세히 복원해 냈다. 이를 테면 고려 조정의 강화 천도 뒤 백성들의 반발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1232년 7월 고종과 귀족들이 강화로 몸을 피한 뒤 관노(官奴) 이통은 “우리에게 임금은 없다. 조정도 없다”며 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충주에선 우본이 “강화로 도망한 조정은 우리 조정이 아니다. 이제 고려는 없다”며 군사를 일으켰다. 이들의 말이야 소설적 상상력이 더해진 것이겠지만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무신 중심의 항몽파와 문신이 주를 이뤘던 화친파의 갈등, 태자가 원 나라에 입조하기까지의 과정 등도 손에 잡힐 듯이 그려진다.

 책에 담긴 교훈도 만만치 않다. 지은이는 역사를 창조하는 힘은 권력이라고 본다. 이른바 ‘권력사관’이다. 또 명분과 실리, 자주와 독립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 우리 역사의 외교노선이자 국가와 민족의 생존전략이었다고 한다.

이런 시각에서 책은 당시 지도부의 생각과 행동에 초점을 맞춰 서술했는데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몽골이란 거대 세력에 대한 정보는 부족했지만 성공적인 대응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항전 중에도 외교적 노력을 병행해 강화 후에도 국가와 왕위를 보전했는데 당시 몽골에 맞선 나라 중 이 같은 항전공존형은 고려가 유일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골장군 김경손, 전쟁영웅 최춘명, 효자 장수 채송년 등 잊혀진 영웅들의 활약이나 김보정· 이장용 등 화친파의 고심을 접하면 오늘날 지도층은 얻는 것이 적지 않을 듯하다.

 전체를 관통하며 활약하는 가공의 인물이 없는 탓에 흡인력은 떨어지지만 교과서에선 한 줄로 처리된 역사의 이면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한 노작(勞作)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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