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죽인 금융가/사정불똥에 인맥재편 예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이원조·금진호라인들 바늘방석/학연·지연떠난 자율적 인사기대
이원조의원과 이용만 전재무장관이 동화은행 뇌물사건으로 문제되고 금진호의원도 어려운 입장에 처한 것으로 알려지자 금융계는 때마침 불어닥친 행장·임원의 연쇄 교체바람 속에 벌써 기존 인맥의 「대재편」에 대한 예상으로 술렁이고 있다.
이·금 두의원은 5,6공시절 금융계에 이른바 「TK」(대구·경북) 세력의 뿌리를 깊숙이 내리게 한 양대 실세였으며 이 전장관 또한 고려대 인맥의 금융계 착근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기 때문이다.
한때 이들에게 크든,작든 「신세」를 졌던 내로라 하는 현직 금융계 인사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있는가하면,그간 지연·학연에 밀려 소외당했다고 생각하는 인사들은 적잖은 기대를 걸고 있기도 하다.
지금까지 나타난 금융계 판도변화의 특징은 정치권과 가까웠던 행장들의 정리가 거의 마무리된 점이다. 행장선임과정에서 금진호의원의 후원을 업고 이원조의원의 지원을 받은 경쟁자를 탈락시켜 이 의원과 이 전장관의 사이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김준협 전서울신탁은행장이 지난 3월18일 시중은행장으로 선 가장 먼저 물러났다. 이 의원 등 여러 인물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다른 은행의 행장자리가 빌때마다 재력을 과시하며 더 큰 은행으로 옮겨가기를 바라던 이병선 보람은행장도 그 다음날 옷을 벗었다.
동생 회사에 대한 과다대출로 지난달 14일 물러난 박기진 전제일은행장도 평소의 폭넓은 교제범위 가운데 이 의원이 포함돼 있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동화은행 사건의 안영모행장은 박철언의원과 등산을 같이 하는 등 월계수회 회원들과 가까운 사이.
한편 새정부 실세와의 특별한 관계 때문에 새로운 금융계의 실세로 떠올랐던 김재기 전외환은행장마저 지난 14일 「정치입문」 명분으로 물러나자 5,6공시절의 금융계 질서는 일단 재편의 전기를 맞은 셈이다. 그러나 아직 「신질서」의 핵과 실세는 부상되지 않은 상태라고 금융계는 분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율화분위기는 확산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당분간 불안상태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간 「출신성분」을 따졌던 금융계의 뿌리깊은 지역주의가 차제에 불식되리란 희망적인 관측도 나돌고 있다. 지난 2월 주총전 7개 특수은행과 8개 시중은행의 임원 1백78명을 출신별로 보면 경북출신이 46명,서울 42명,경남 20명의 순으로 경·남북출신이 전체의 37%를 차지했었다. 그러나 2월의 시중은행 정기주총에서 새로 임원이된 15명중 이른바 TK는 3명뿐으로 TK세력의 퇴조가 뚜렸했으며 부산·경남(PK)세력의 부상이 눈에 띄었다. 금융게는 이번 사정홍역이 금융계의 자율화를 앞당기고 체질을 강화하는 긍정적인 쪽으로 흘러가길 바라고 있다.<양재찬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