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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질병’ 복지부 고무줄 잣대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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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도 질병이고 건강보험 급여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비만치료의 일부를 급여대상에 넣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키로 했다.

다만 복지부는 여전히 비만 자체를 질병으로 보지 않고, 여러 질환의 위험요소로만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만치료가 급여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현행 건강보험법령에서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경우, 질병의 진료를 직접목적으로 하지 않는 경우 등을 비급여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복지부는 비만의 경우 그 형태가 다양하고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비급여 대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다. 대신 비만으로 인한 고혈압, 당뇨 등 합병증에 대해서는 보험급여를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복지부가 편의에 따라 비만을 심각한 질병으로 규정하다가, 정작 보험급여 문제처럼 재정 지출과 관련될 때는 슬그머니 '건강위험요소'로 수위를 낮추는 등 말바꾸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1일 서울행정법원은 한 비만전문 클리닉 원장이 낸 행정소송 판결을 통해 비만의 경우 지방흡인술 등 미용목적이 아닌 한 비만치료도 요양급여대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의학적으로 비만은 비정상적인 체지방의 증가로 인해 대사장애가 유발된 상태며, 다양한 요인들이 비만을 초래하고 다양한 질병을 유발한다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세계보건기구(WHO)도 "비만은 병이고 그것도 장기적인 투병이 필요한 질병이다"고 언급했다는 점, 그리고 현행 우리나라 관련법령에서 비만치료를 비급여대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는 만큼 요양급여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법, 요양급여기준규칙 등에는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경우, 질병의 진료를 직접목적으로 하지 않는 경우 등을 비급여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비만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이같은 법원판결에 대해 복지부는 하루 종일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이를 인정할 경우 막대한 건강보험 재정부담이 발생하고, 그렇다고 이를 부정하자니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해온 비만예방 정책과 일부 배치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

결국 복지부는 이날 저녁 늦게서야 "향후 비만진료를 비급여대상으로 명시하거나, 반드시 비만치료가 필요한 대상을 선별해 급여대상으로 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해 조치할 계획"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어정쩡한 잠정결론을 내렸다.

쉽게 말하면 두 가지 가능성을 놓고 어느 한쪽으로 아직까지 결정하지 못했단 얘기다.

바로 이 '어정쩡한 결론'이야말로 그동안 정부의 비만정책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관계자는 "복지부의 정책은 앞뒤가 바뀌었고, 재정문제에 끌려다니면서 정작 중요한 원칙을 놓치고 있다"면서 "WHO도 인정하고, 한국표준질병분류에도 질환으로 구분돼 있는 비만을 왜 질병이 아니라고 부정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즉 돈 문제는 나중에 고민하라는 것. 우선 비만을 질병으로 인정할지, 말지를 정한 뒤 그에 따라 재정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단계적으로 보험급여를 인정하는 것이 정공법이라는 충고인 셈이다.

복지부의 이날 입장발표는 2년 전 '국가비만관리종합대책'(2005년11월)에서 비만치료를 급여화해야 밝힌 것과도 말이 다르다.

비만예방을 위해 적극적인 정책개입을 담은 비만관리종합대책을 통해 복지부는 중장기 추진계획으로 '비만치료 및 관리 서비스 보험급여 추진'을 명시하고, 고도비만 환자에 대해서는 약물치료 보험급여를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법원판결로 논란이 일자, 비만치료를 비급여로 명시하거나 선별해 급여화하겠다는 '결론없는 결론'을 내고 있는 것이다.

대한비만체형학회의 한 회원은 "당뇨병이 그 질환 자체로도 위험하지만 그로 인한 합병증의 위험성 때문에 관리되고 보험급여화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만 역시 그 차체로 충분히 건강에 위협을 주는 질병이다"며 "시급한 비만치료 환자에 대해 제한적으로 급여대상 지원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메디컬투데이/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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