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특수지 개발 안간힘 제지업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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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보수화는 안된다. 개혁만이 살길이다.』
기술개발이나 수출에는 큰 관심 없이 짭짤한 내수시장에 안주해 있던 제지업계가 어려워진 대내외 환경 탓에 어쩔 수없이 개혁에 동참하고 있다.
밀려드는 외국제품, 국제원목가격의 폭등, 자원재활용과 환경보호정책의 강화, 공급과잉에 따른 내수경쟁 등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주변환경은 제지업체의 보수성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고 모두들 첨단·고부가가치제품의 생산, 해외진출, 수출확대 등 살아남기 위한 변신에 한창이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 외국제품과의 경쟁을 위한 특수용지 생산 추세로 지금까지 한솔제지 등 몇몇 업체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이고는 있으나 첨단기술확보가 쉽지만은 않은 상태다.
『종이 만드는데 무슨 첨단기술이냐』고 하겠지만 신문지·백상지·아트지·화장지와 같은 기존의 종이제품 외에 팩시밀리용지로 알려진 감열지·감압지·컬러프린터 용지 등과 같은 특수종이 생산에는 반도체에 비유되는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고 있다.
먹지 대신 사용되는 전표용 감압지의 경우 일반인에겐 단순하게만 보이지만 종이의 섬유질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극소형 잉크캡슐을 삽입시켜 볼펜 등의 압력을 받으면 캡슐이 터지면서 잉크가 번져 글씨가 써지는 방식일 정도다.
한솔제지는 그동안 매출액의2%를 매년 연구비(92년 1백억원)로 투자한 결과 팩시밀리 용지용 특수용액과 감압지를 국산화한 것은 물론 91년 먼지가 발생하지 않는 반도체 공장용 무진지, 작년엔 컬러인화가 가능한 컬러프린터 용지를 각각 일본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개발해 놓은 상태.
이밖에도 전기를 넣으면 따뜻해지는 발열지, 악취를 제거하는 소취지, 온도별로 색깔을 나타내는 등온지, 향기를 내는 방향지, 과일을 신선하게 하는 선도 보유지 등을 개발 중에 있다.
신호·무림제지도 팩시밀리용지 개발에 성공하는 등 특수지 개발에 힘을 쏟고 있으며 최첨단제품은 아니지만 얇고 가벼운 출판물용 코트지·고광택 아트지 등 수입 대체품이면서 고부가가치를 지닌 제품의 개발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신호제지 계열의 동신제지가 최근 진주공장에 1백50억원을 투입, 경량코트지의 생산설비를 갖췄으며 한국제지도 기존온산공장에 자체 개발한 코팅설비를 코트지와 고품질 아트지를 생산 중에 있다.
다소 영세한 골판지업계에도 최근에는 기술개발붐이 일어(주)한우는 일본에서 전량 수입하던 3중 골판지의 생산을 위해 반월공장에 15억원을 투입, 하반기부터 생산할 계획. 3중 골판지는 나무상자처럼 무거운 물건을 담을 수 있도록 한 고강도 제품으로 현재 대구의 대아산업도 생산을 추진하고 있고 우성산업은 이를 이용, 의자와 같은 종이가구를 개발 중에 있다.
그러나 이같은 특수제품의 생산은 엄청난 연구비용과 생산설비에 비해 국내시장이 아직 작은 편이고 해외시장에서는 이미 본격적인 생산단계에 오른 일본 등 외국제품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기 일쑤여서 기업들이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그러나 한솔·계성·무림·신호·홍원 등 주요 제지업체들이 최근 경쟁적으로 인쇄용지의 생산설비를 증설, 올해 총생산량(1백72만t)이 수요량(1백30만t)을 훨씬 웃도는 것은 물론 97년까지 공급과잉 전망이어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기술개발이나 고부가가치제품의 생산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현재 한솔제지가 호주에 대규모 조림사업을 벌이고 있고 신호제지가 태국, 동해펄프가 미국, 유한킴벌리·쌍용제지가 중국에 플랜트수출이나 현지공장을 설립 중에 있는 것처럼 해외진출을 통해 안정된 원목 공급과 수출확대를 꾀하는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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