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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대충 넘어가는 재무위/이상일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국회의 핵심상임위중 하나인 재무위가 마치 「침먹은 지네」처럼 무기력하다. 의원들이 동화은행 비자금 조성사건과 포항제철 세무조사문제 등 국민적 관심을 끌고있는 굵직한 현안들을 비켜가는듯한 인상이 역력하다.
그들 스스로도 너무했다고 생각했음인지 회의 사흘째인 12일에는 『재무위가 유고상위라는 비난이 있는데 앞으로 잘하자』(노인환위원장)고 반성하기조차 했다.
재무위는 출발부터 석연찮은 느낌을 주었다.
재무부를 상대로 질의를 벌인 10일 의원들은 깊이라곤 전혀 없는 백화점식 질문으로 시간을 때웠다. 이날은 당연히 동화은행 비자금 조성문제가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무슨 영문인지 9명의 질의의원중 8명은 꿀먹은 벙어리였다. 나머지 1명의 질의도 장관의 수사상황 파악정도만을 묻는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
국세청 등을 부른 다음날에는 더했다. 이날 많은 의원들은 회의전 포철 세무조사에 대한 추궁성 질의서를 돌렸다. 그런데 막상 회의가 시작되고 나서 이 문제를 따지는 의원들은 별로 없었다. 몇몇 의원들은 아예 질의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때문에 국세청에 대한 질의는 업무보고시간까지 포함해 1시간만에 끝나버렸다.
의원들은 기자들이 『질의도 안할거면서도 보도자료를 낸 것은 언론에 이름석자 내기 위해서가 아니냐』고 힐난하자 『시간이 없었다』고 변명했다. 즉 이날은 국세청외에 다른 2개부처의 보고가 있을 예정이어서 부처별로 질의시간을 미리 정해놓은 만큼 꼭 시간을 지켜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원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회의시간 엄수를 중시했는지 모를 일이다. 이들은 이날 잡담·지각 등으로 개회예정시간을 30분이나 넘긴 사람들이다.
한국은행·은행감독원 등을 부른 12일 『잘해보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음에도 썩 달라진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몇몇 의원들이 동화은행건을 거론했으나 그냥 『진상을 밝히라』는 정도에 그쳤지 공부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결국 이날도 이것저것을 건성으로 건드려보는 「물덤벙 술덤벙」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다.
노른자 상위로 소문난 재무위여서 사정바람을 겁내 소극적 의정활동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항간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도 의원들은 좀더 성실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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