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묻힌 역사 재조명 작업에 보람 느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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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소설 속에서 정치에 꾸준히 관심을 보여온 작가 고원정씨(37)가 TV프로의 진행자로 나섰다. 그가 맡은 프로는 의혹에 싸인 과거의 정치적 사건들을 재조명하는 KBS-1TV『다큐멘터리 극장』.
고씨는『사랑방 중계』『작가와 화제작』등 TV프로에 게스트로 초대되거나 KBS2FM의 『FM대행진』에서「시사칼럼」코너를 맡은 적은 있으나 이처럼 대형 TV 프로 전체를 직접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프로그램진행 제의를 여러번 받았으나 글쓰는데 지장이 많을 것 같아 사양했습니다. 이번에 맡은 프로는 내용이 제 이미지와 잘 맞고 일요일 황금 시간대에 편성된 교양프로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78년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85년 중앙일보신춘문예에 단편『거인의 잠』이 당선돼 등단한 고씨는 줄곧 전체와 개인의 관계를 문학적 주제로 삼아왔다.『빙벽』『최후의 계엄령』을 비롯한 그의 작품은 전체가 개인을 억압하는 대표적 현장인 군대와 정치 세계를 배경으로 한 것들이 대부분.
이중 영웅적으로 산화한 한 병사의 신화가 교묘한 지배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고 있는 80년대 어느 보병 대대에 새로 부임한 장교가 그 신화를 깨뜨려 나가는 과정을 그린『빙벽』은 현재 모 방송사에서 드라마제작을 교섭 중에 있다.
고씨가『다큐멘터리 극장』의 진행을 맡은 동기도 그의 이런 문학적 주제와 일맥상통한다.
『파묻힌 역사적 사건들을 재조명하는 과정에서 현재 우리사회의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 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9일 방송된「김지하의 오적 필화사건」은 첫진행이라 현대와의 연결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기술적인 면에 익숙해지면 기획단계에서부터 이 부분에 좀더 신경을 쓸 생각입니다.』
앞으로도 프로그램의 성격이 마음에 들면 TV출연을 사양하지 않을 것이라는 고씨는 최종적으로는 정치시사토크쇼의 진행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작가가 TV에서 할말 다해버리면 작품에 쓸게 무엇이었겠는가」라는 일부의 부정적 눈초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글을 쓰는 것도 넓게 보면 예술 형식에 자신의 발언을 담는 것인데 이런 저런 이유로 작품에서 수용할 수 없는 얘기들을 다른 언로를 통해 내보내는 것은 또 다른 글쓰기가 아니겠습니까.』<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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