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초등교 운동장 빼앗아 민주화 사업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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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가 서울 시내 중심의 덕수초등학교 운동장에 대형 민주화 기념관을 건립하려 한다. 이 운동장은 본래 덕수국민학교 것이었다가 행정자치부 소유 부지로 됐다. 이 학교는 3년 전부터 무상으로 빌려 쓰고 있다. 행자부 땅이라 해도 학교의 필수적인 교육 시설을 없애고, 민주화 기념관을 건립하겠다는 것은 교육을 무시하고, 700여 어린 학생의 학습권을 빼앗는 횡포다.

 우선 민주화 기념사업에 과연 기념관이 필요한가부터 따져 보아야 할 일이다.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는 그간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하는 등 역할을 했으면 그 임무는 이제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기구는 한시적으로 운영하다 임무를 다하면 폐지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기념관을 짓고 영구 사무실을 갖는 등 또다시 일을 확대시킨다 하니 문제인 것이다. 그 돈은 모두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덕을 보자고 민주화운동을 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백 번 양보하여 기념관이 설혹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해도 왜 하필이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지어야 하느냐는 점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한 것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밝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제 민주화운동은 하나의 권력화된 느낌이다.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도심 속의 운동장은 학생들에게 필수적인 공간이다. 지역 주민들도 함께 이용하면서 건강을 다지는 공공장소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 건물이 들어선다고 생각해 보라. 기념사업회 측은 기념관 지하에 체육시설을 만들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발상이 한심할 뿐이다.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체육활동을 하란 말인가.

 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 신부)는 잘못된 생각을 빨리 철회하길 바란다. 먼저 민주화 기념관 건립을 고집하지 말라. 행정자치부도 이를 승인해선 안 된다. 서울시교육청의 책임 역시 크다. 빨리 운동장을 되찾아 어린이들에게 영원히 돌려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