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제도개편안의 허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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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앞으로 일반은행은 대형화되고 특수은행은 전문화되어 은행산업의 구조조정이 일어나게 됐다. 또한 은행들은 자회사 등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겸업이 허용되는 등 이제 우리의 은행산업은 전혀 새로운 환경을 맞게 된 셈이다.
이번 금융제도개편 보고서는 한마디로 은행을 효율적으로 경영하기 위해 주인있는 책임경영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현재의 대기업그룹,즉 재벌이 지분을 늘릴 가능성은 차단해야 한다는 모순된 구조속에서 고민한 작품이다. 때문에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대로 은행을 비롯한 한국의 금융산업이 외국기업과 경쟁하고 실물부문 지원을 차질없이 해낼지 문제의 본질을 비켜간 느낌을 주고 있다.
지난번 금융산업개편 1부보고서의 핵심이 금융과 재정 및 조세간의 종합적인 기능재정비를 다룬 것이었다면 이번 2부보고서의 핵심은 금융부문과 산업부문간의 관계재정립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보고서를 작성한 소위원회는 전체적으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간의 결합을 막는다는 전제하에서 작업을 진행한 느낌을 준다. 이는 아마도 현실적으로 소유집중에 대한 국민정서를 감안해 대기업이 은행을 소유할지 모르는 사태를 막자는 의도가 반영된 듯하다. 이는 은행 뿐 아니라 보험이나 증권 등의 대주주 소유지분 상한선을 단계적으로 낮추는 데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개인소유의 집중을 개선해 소유구조를 분산하자는 이슈와 기업이 장기적으로 발전할 방향,특히 은행과의 관계는 분리해 다뤄야할 과제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가 신경제5개년계획의 기본구도에서 산업정책과 금융정책간의 연관관계를 먼저 설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기본작업이 먼저 선행되어 단계별로 은행을 포함한 모든 기업에 대한 소유분산정책과 그 진행과정에 대한 구도가 나와야 한다.
그 다음에는 우리 기업들이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은행과 기업과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무조건 은행이나 기업할 것 없이 대주주소유상한을 정하고 책임경영을 할 수 있는 주체가 없게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재고해야 한다. 소유분산에 대한 확고한 원칙에 합의를 하는 이상 은행이 기업주식을 소유할 수도 있고 기업이 은행주식을 소유하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는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번 보고서중 분명치 않은 점중의 하나가 은행감독체계와 한은의 역할 등이 모호하게 처리된 부분이다. 이는 최근 은행감독원이 시중은행의 행장후보에 대한 재선요구권을 갖게 한데서도 나타났듯이 재무부가 여전히 금융자율화의 끈을 놓지않겠다는 의사로 풀이된다. 이 문제도 기본적으로 재정·조세 및 금융정책간의 기능조정과 정책을 관장하는 기구의 개편과 동시에 검토되어야 할 문제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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