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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6)|<제89화>내가 치른 북한숙청(18) 전 내무성부상 강상호|남노당파 제거 1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남노당파 간부들의 검거선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숙청대상인물로 이름이 오르내리던 주소련대사 주영하가 전격 소환된 사실이 알려지자 토착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선 「끼워팔기식 숙청」이라는 여론이 돌았다.
토착공산주의자들, 즉 국내파 인사들은 『주영하 동지는 정통 남로당파도 아닌데 박헌영 부수상의 정치노선을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종파주의자로 몰아붙이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그런 시각으로 보면 공화국내 간부들 중 종파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이들의 주장처럼 주영하는 사회주의혁명 과정에서 가장 장애요소로 꼽히는 종파주의자가 아니였음은 확실했다.
그러나 주영하의 소환배경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결코 끼워팔기나 순간적인 결정이 아닌 「정치적인 숙청」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주영하는 일제하에서 토착공산주의자 오기섭 등과 함께 조선공산당조직에 참가해 함경남도에서 농민운동을 하다 해방을 맞았다.
그는 해방의 공간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던 청년들을 규합해 원산시 인민위원회를 조직했고 위원장에 추대됐었다.
그후 평양으로 올라와 오기섭 등과 함께 사실상 서울의 중앙당에서 분리된 조선노동당 북조선분국 설치 때 세운 공을 인정받아 46년8월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과 정치위원에까지 오르는 등 국내파의 실세로 급부상했다.
이어 공화국수립을 눈앞에 둔 48년3월 북로당 부위원장에 오른 그는 그해 7월 중앙선거위원회 위원장, 8월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에 피선됐고 9월 공화국 1차 내각 때 교통상을 맡았다.
입각 한달 후인 그해 10월 공화국과 소련의 첫 국교수립으로 초대 주소련대사에 임명된 그는 차기 유력한 외무상후보라는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김일성수상과 김책부수상, 박헌영부수상, 최용건민족보위상 등 최고지도부에서는 그를 주소대사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갈등을 노출시켰다.
수상비서였던 문일 동무는 소련으로 귀국 후 동무들에게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김일성수상을 비롯, 김책부수상·최용건민족보위상 등 빨찌산파 간부들은 소련의 비중을 고려해 박헌영외무상이 천거한 주영하를 강력히 반대했다고 한다.
이들은 주중대사도 박헌영의 직계인 권오직으로 내정해놓고 있는 터여서 주영하를 소련대사로 보낼 경우 공화국외교의 두 기둥을 박헌영의 심복으로 메우는 것이 위험스럽다고 판단했다.
김일성수상은 이같은 속마음을 감춘채 『박동지, 주영하 동무는 모스크바에서 기피하는 인물이니 곤란합니다』고 박헌영부수상을 설득했다.
박헌영부수상이 『수상동지, 만약 모스크바에서 주영하를 거부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제가 알기로는 오히려 모스크바에서 주영하를 초대대사로 추천하고 있습니다.
모스크바 외교가에선 주영하의 투철한 혁명정신과 인품, 유창한 소련어실력 등을 고려해 적격자로 꼽고 있다는 겁니다』며 오히려 김수상을 설득했다.
순간 김일성수상은 화를 벌컥 내며 『박동지, 이 나라의 수상이 누구입니까.
수상이 일개 대사임명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수상이 안 된다면 안됩니다』 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고 한다.
이같은 소문은 즉시 평양에 있던 소련정치고문들(정보기관 소속)의 귀에 들어갔고 그들을 통해 모스크바에도 보고됐다.
모스크바에선 다시 고문들을 통해 『초대대사엔 주영하가 무난할 것 같다』는 언질을 김일성수상에게 전달, 소련대사 인선문제는 일단락 됐었다.
소련의 이같은 태도는 김일성수상의 「빨찌산식 정치술」보다 한 수위인 박헌영외무상의 사전포석 때문이었다.
박헌영외무상은 수상의 반대를 의식해 평양에 와 있는 소련 정치고문단과 정보기관원, 그리고 모스크바의 외교실력자들에게 주영하가 주소련 초대대사에 가장 적임자임을 사전에 충분히 주지시켜 놓았다.
당시 박헌영부수상은 비록 공화국의 최고권력을 쟁취하는데는 실패했지만 모스크바 중앙당으로부터 지도자적 자질을 인정받아 모스크바의 정보·외교 실력자들에게 말발이 먹힌 「실력자」였다.
김일성수상이 주영하를 싫어한 배경에는 해묵은 앙금이 깔려있는데다 박헌영부수상의 월북이후 그의 동향을 은밀히 감시해온 내무성정보국 요원들의 보고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내무성 정보국 요원들의 비밀 사찰을 받은 사람은 주영하뿐 아니고 주요간부들도 마찬가지였다. 【강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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