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과 나침반] 진짜 賞 탈 사람 어디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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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의 잘잘못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건 온당치 않다. 지난 일들을 꼼꼼히 살펴본 후 잘한 사람은 상을 주어 격려하고 못한 사람은 훈계하여 반성하도록 하는 게 마땅하다. 어느 분야에서건 상 받을 사람과 벌 받을 사람의 명단이 늘 오르내리게 마련이다.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는 상 받을 이보다 벌 받을 이가 더 많은 듯하여 어수선하다. 서로 제 갈 길을 잘 갔으면 좋았을 텐데 무리한 욕심으로 빚어진 '잘못된 만남' 탓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 연말의 방송가는 온통 잔치 분위기였다. 그야말로 온갖 종류의 상이 '난무'했다. 지금은 오히려 상을 준 측에 대한 시비로 의견이 분분하다. 과연 상 받을 만한 이에게 상을 주었느냐며 그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리가 높다. 시상식이 이벤트에 머물지 않으려면 신상필벌의 기준이 명쾌해야 한다. 온몸을 던져 사람들을 즐겁게 한 뒤 그 열매로 상을 받는 사람의 소감은 감동적이다. 고생 끝에 이런 즐거움이 왔음을 증언하고 보은의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은 아름답고 교훈적이다.

연말 방송가의 상들은 대체로 자사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올리는 데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감사패의 성격이 짙다. 마치 선거가 끝난 뒤에 득표율을 올리는 데 공을 세운 사람에게 무언가 인센티브를 주는 것과 비슷하다. 당선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는 감투가 민망해 보이지 않으려면 유권자가 납득할 만한 전문성을 그가 지녀야 한다. 열심히 하라고 준 상인데 오히려 상의 무게에 치어(취해) 드러눕거나 주저앉는다면 그야말로 꼴사나운 형상이다.

모름지기 상을 주는 쪽은 권위가 있어야 하고 받는 쪽은 실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명실상부다. 유명무실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짜증나게 만든다. 방송사마다 이런 저런 이름으로 주는 상이 실제로는 인기상이나 시청률 유공상, 나아가 앞으로 친하게 지내보자고 던지는 추파에 불과하다면 굳이 그토록 요란하게 행사를 중계할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진짜 연기나 노래를 잘해서 받는 상이라면 후보자나 시청자가 모두 수긍할 텐데 그렇지 않은 상들이 남발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차제에 연말시상식의 대상 분야를 바꾸거나 넓히기를 제안한다. 화려한 쪽에 눈길이 가는 건 당연하지만 TV프로그램은 눈에 보이는 몇몇 사람이 만드는 게 결코 아니다. 연기자와 가수 뒤편에는 정열과 자의식을 가진 전문가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은 평생 상과는 거리가 멀다. 연연해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에게 상을 주어 감사를 표하라. 카메라맨.조명.음향.음악.의상.소도구.분장.특수효과 등등. 프로그램이 끝날 때 재빠르게 지나가는 이름들에 불과하지만 누구보다 아티스트로서의 빛나는 자존심을 그들은 가지고 있다.

달콤하고 화려한 쪽에만 박수치는 TV는 비굴해 보인다. 새해엔 공정하고 공평한 TV가 되길 바란다. 아울러 차별 없는 TV를 기대한다. 상을 주려면 진짜 받을 만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아니면 그냥 조용히 감사패를 돌리고 마는 게 낫다.

주철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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