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아의 말하기 칼럼]대화 매끄럽게 이어가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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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함께 대화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가, 대화 기피 인물인가. 어떤 사람과는 대화가 마치 음악 연주처럼 매끄럽고, 어떤 사람과는 1분이 10년같이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같이 얘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대화 과정에서 얘기를 주고받는 순간을 잘 포착해야 한다.

대화는 말하는 사람(화자)과 듣는 사람(청자)이 계속 바뀌는 말하기다. 듣기와 말하기라는 역할이 원활히 순환될 때 물 흐르듯 편안한 대화가 될 수 있다. 적당한 때 말하기를 멈추고 상대에게 말할 기회를 넘기고,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다가 적절하게 말하기를 넘겨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때 말할 기회를 넘기거나 받아야 하는가. 대화 과정에서 서로 주고받는 일종의 신호, 즉 큐(cue·신호)를 정확히 포착해 적절히 활용하면 호감을 주는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다. 반대로 큐를 잘못 읽고 끼어들거나 대화가 자주 겹치면 버릇 없는 사람이나 짜증 나는 상대로 기억될 것이다.

먼저 말하는 사람이 보내는 큐에는 ‘계속 말하겠다는 큐’와 ‘차례를 넘기려는 큐’가 있다. 계속 말하겠다는 큐로는 들릴 정도로 숨을 들이마시거나, 하던 제스처를 계속하는 것이 있다. 듣는 사람과의 눈맞춤을 피하는 것도 말할 기회를 넘기지 않겠다는 몸짓이다. 억양을 완전히 내리지 않아도 말할 게 남았다는 뜻이다. ‘음’ ‘저기’와 같은 군말은 상대방이 끼어들지 못하게 하려는 태도다. 군말은 ‘아직 내가 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말이다.

차례를 넘기려는 큐도 여러 가지다. 좌중의 한 청자에게 넘기고자 할 때는 그를 바라보며 간단한 질문, 즉 ‘그렇지?’, 혹은 ‘좋아?’ 하고 묻는다. 혹은 억양을 내림으로써, 침묵을 유지함으로써, 청자와 직접 눈을 마주침으로써 대화의 순번을 넘기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기도 한다.

이때 청자는 기꺼이 말하는 역할을 받겠다는 신호를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주고받는 순간이 매끄럽지 못한 것은 양쪽 모두의 책임이다. 미국에서 부부간의 대화 방식을 조사한 결과 대화가 순조롭게 이어지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상대방의) 무응답’이 꼽혔다. 말하던 사람이 순번을 넘기려 하는데 상대방이 이를 받지 않거나, 큐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대화의 가장 큰 걸림돌인 셈이다.

듣는 사람 역시 신호를 보낸다. 청자의 큐 역시 ‘차례를 요구하는 큐’ ‘차례를 거부하는 큐’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차례를 요구하는 큐는 말하겠다는 의사 표시다. ‘음…’ ‘저…’ 등의 소리를 냄으로써, 혹은 입을 벌리거나 눈빛을 보냄으로써 그런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 상대방의 주의를 끄는 손동작이나 몸을 앞으로 내미는 행위도 말하겠다는 사인이다.

차례를 거부하는 큐는 눈맞춤을 피하거나 대화와 상관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기침을 하거나 코를 푸는 행동 등은 특히 말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사 표시다.

듣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미소로 동의를, 찡그림으로 거부나 이견을 표현한다. 말하는 사람은 이런 비공식적인 큐를 통해 듣는 사람이 느끼는 지루함의 정도를 빨리 포착해야 한다. 청자의 눈맞춤 여부나 자세를 숙이는 정도, 집중하는 모습 등으로 파악할 수 있다. 지루할 때 청자는 뒤로 기대며 눈맞춤을 피한다. 청자가 빨리 고개를 끄덕일 때 화자는 말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 좋다. 청자가 귀에 손을 가져다 댈 때 소리를 크게 내거나 속도를 늦춰야 한다. 이러한 감추어진 의사 표시를 잘 읽는 것, 이것이 좋은 음악 같은 대화를 이어가는 관건이다.
 
유정아씨는 현재 KBS 1FM ‘FM가정음악’을 진행하며, 서울대학교에서 말하기를 강의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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