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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국가' 아프가니스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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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 04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과 남부 중심도시 칸다하르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의 교량 부분 아래쪽에서 양치기 두 명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한가하고 평화롭게 느껴지는 사진과 달리 이곳은 탈레반이 정부군과 싸우면서 납치와 테러를 자행하는 위험천만한 땅이다. 분당샘물교회 봉사단원들은 밤 늦게 이 고속도로를 달리다 납치됐다. 외국인이 이 지역을 밤에 이동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외교 전문 잡지 ‘포린 폴리시’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8위의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다(1위는 수단, 북한은 13위). ‘정정 혼란 국가’ ‘파탄 국가’로도 번역되는 ‘failed state’는 중앙정부가 국토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 국가를 말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수도 카불을 제외한 지역은 탈레반을 비롯한 군벌 세력들이 할거하고 있다. 카불과 그 인근 지역마저 폭탄 테러가 빈발한다. 그래서 ‘카불 시장’이 별명인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은 암살 위협 때문에 지방으로 마음 놓고 시찰을 떠날 수도 없다. 34개 지방 중 5개 지방은 상황이 특히 심각하다. 정부의 무능과 부패 속에 문맹률 64%에 평균수명은 46세에 불과하다. 실업률 40%에 2600만 인구의 3분의 2가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간다.

카르자이, 암살 위협에 지방 시찰도 못 떠나

아프가니스탄은 왜 ‘실패한 국가’가 됐을까? 그 실패는 결국 근대화의 실패다. 현 정부가 친서방 민주주의를 시도하기 이전에도 아프가니스탄은 군주정ㆍ공산정ㆍ신정을 거치며 각 정체(政體)마다 나름대로 변화와 개혁을 추구했다. 23일 노환으로 사망한 전 국왕 모하메드 자히르는 재위 기간(1933~73) 동안 여성의 베일 착용을 종식하고 서방 자금 도입을 시도했다. 1996~2001년 집권 당시 탈레반 정부도 부패 척결과 정치 안정 등을 실현해 초기에는 인기가 좋았다.

근대화에 성공하려면 외세 문제를 어떤 형태로든 해결해 국내 체제와 국제 체제가 시너지를 발휘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양 체제가 어긋나는 경향이 있다. 아프가니스탄만큼 외세에 시달린 나라도 없다. 아널드 토인비는 이 지역을 ‘세계의 로터리’라고 불렀다. 19세기에는 ‘거대한 게임(Great Game)’으로 불리는 러시아와 영국 사이의 각축전 현장이기도 했다. 그래서 친외세 정책은 아프간 체질에 맞지 않는다. 친소련 공산정권(1978~92) 당시 10만 병력을 투입한 소련의 아프간 침공(1979~89)은 아프간 민간인 사망자 60만~200만 명, 500만 난민과 소련군 사망자 1만5000명이라는 처참한 희생을 뒤로하고 결국 실패했다. 반공 무자히딘(이슬람 전사)에 대한 미국의 지원도 주효했다. 그러나 소련의 패퇴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의 관심권에서 벗어났다.

반소 투쟁 과정에서 싹튼 탈레반 정권이 등장해 알카에다와 연계되고 9·11 테러가 발생하자 미국은 다시 부랴부랴 아프가니스탄에 관심을 갖게 됐고 2001년 10월 ‘항구적 자유 작전’을 개시 탈레반 축출에 성공한다. 같은 상황의 반복이 시작됐을까? 친서방적인 카르자이 정부가 2004년 12월 수립됐으나 아프가니스탄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미국은 이라크 문제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이라크만큼 지원한다면 아프가니스탄은 1년 내에 천국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미국의 ‘무관심’ 속에 탈레반이 최근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간의 불협화음도 있다. 미군 군사작전은 민간인 희생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게 나토의 판단이다.

외세 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내부적 통합이다. 부족주의 문제도 있지만 아프간 정부를 위협하는 것은 남부와 카불 동남부를 근거지로 하는 탈레반의 존재다. 탈레반은 어떻게 부활할 수 있었을까? 탈레반 정권 붕괴 후 일상으로 돌아간 탈레반 전사도 많으며 일부는 2005년 의회 선거에서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이 후원하는 현 정부가 실효성 있는 결과를 내놓지 못하자 TV를 금지하고 수염이 짧은 남성들을 투옥했던 탈레반이 부활할 수 있었다. 탈레반은 원래는 테러 집단이 아니었다는 설도 있다. 부활한 탈레반은 폭탄 자살 테러와 원격 폭파 방식 등도 수입했다. 탈레반 점령 지역에 집중된 아편 재배도 주요 물적 기반이다. 탈레반은 그래도 국토의 95%를 장악했었고 안정적이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탈레반 섬멸 작전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급증한 것도 반미 여론을 부추기고 있다.

탈레반 문제는 종교 문제이기도 하다. 종교 그 자체는 반근대화도 친근대화도 아니다. 예컨대 유교는 ‘머리는 잘라도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는 외침과 같이 전통 수호의 입장에 설 수도 있고, 자본주의적 발전에 필요한 덕목의 보고(寶庫)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탈레반의 이슬람은 근대화에 반대하며 7세기 선지자 모하메드의 시대로 복귀하는 것을 꿈꾼다. 그들은 여성이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갖게 되면 여성의 성적 방종이 사회에 만연하게 된다고 본다. 탈레반은 ‘학생들’이라는 뜻이다. 탈레반이 전개하는 ‘학생운동’은 이슬람 전통을 사수하기 위한 반미ㆍ반서방 운동이다. 그리스도교가 정교(正敎·orthodoxy)를 중시하는 데 반해 이슬람은 정행(正行·orthopraxis)의 종교라는 분석이 있다. 그만큼 생활과 밀착된 이슬람의 힘을 약화하기는 어렵다. 현 정부 자체가 이슬람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아프간 근대화의 문제는 이슬람과 근대성의 접합점을 찾는 데서 풀리기 시작할 것이다.

내란뿐 아니라 지진(1998, 2002년)과 가뭄(1998~2001) 등 자연재해까지 아프간 사람들을 괴롭힌다. 이런 아프가니스탄에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은 사치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 나라는 인프라를 건설하고 성장의 동력을 찾아야 한다. 아프간의 아편 생산량은 세계 90%를 차지하며 경제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현 정부의 정책처럼 아편 생산을 카펫·건과류 등의 생산으로 대체하고 아편은 의약품 생산에만 사용되도록 통제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은 이미 절망의 바닥을 쳤고 앞으로는 상승 기류만 타면 되는지도 모른다. 부정선거 시비도 있었지만 2004년 최초의 직접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2006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8%였으며 아프가니스탄은 천연가스ㆍ석유ㆍ금ㆍ은ㆍ철ㆍ석탄 등 지하자원도 풍부하다. 최악의 고비는 이미 넘긴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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